-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진통이 거듭되는 요즘 ‘휴대전화’를 둘러싼 두 사건이 세간에 화제다. 하나는 경기도 가평군 계곡에서 발생한 범죄 혐의와 관련해 용의자 내지 주변인들의 휴대전화에서 오간 내용이 수시로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직접적이지 않은 사생활까지 알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열지 못해 수사없이 무죄로 처리한 경우다. 누구에게나 예민한 ‘휴대전화 비번’과 관련한 것이어서 묘한 대비를 이루며 회자되고 있다.3년 전 서울동부지검 수사관 자살 사건 당시에도 휴대전화가 이목을 끌었다. 경찰이 변사
명경대
박미현
2022.04.18
-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누나 송화를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 모를 주막에서 그녀를 만난다. 동호는 북채를 잡고, 이미 눈이 멀어버린 송화에 소리를 청한다. 구슬픈 가락이 이어지더니 심봉사와 딸 심청이 만나는 장면에 이르며 소리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송화는 아비와 똑같은 솜씨로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러나 오직 가락과 장단으로 오누이의 정을 나눌 뿐, 서로 알은 채를 않는다. 아비 유봉이 송화의 소리에 한을 불어넣기 위해 눈을 멀게 했듯, 둘은 그 한을 다치지 않으려 기약 없는 헤어짐을 택한다. 서편제의 마지막 신은 한
명경대
이수영
2022.04.15
-
어젯밤 봄비에 씻긴 북악산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백악(白岳)은 백악답게 눈처럼 희다. 삼청(三淸)은 삼청답게 창공같이 청량하다. 지난 주말 한창이던 청와대 앞 연분홍 벚꽃은 벌써 생을 다하고 검은 아스팔트 길을 나뒹군다. 지난밤 봄비에 꽃이 피더니 아침 꽃샘바람에 꽃이 떨어진다. 짧디짧은 봄날이 비바람 사이에 오고 가니 가엾고 가엾다. 조선 중기 송한필(宋翰弼) 선생의 시다. 허수아비(偶)의 탄식(吟)일까? 문재인 청와대는 하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임기 종료에 맞춰 이삿짐을 싸고 있다. 하산길이 힘겹다.
명경대
남궁창성
2022.04.14
-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와 달리 출생과 동시에 한살로 인정하는 셈법을 같이 써온 지 오래됐다. 생명이 생긴 순간부터 배 안에 든 아이를 교육하는 전통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고, ‘0’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왕조시대 민간에서 ‘나이’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과세와 부역은 지배의 중요한 방책이었고, 해당 나이에 도달하면 어김없이 닥쳤기 때문이다.요즘엔 생물학적인 나이 말고도 ‘건강 나이’ ‘피부 나이’ 따위가 등장했고, 죽어서는 치아로 나이를 정확하게 추산해내며 다른
명경대
박미현
2022.04.13
-
아침 출근길,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거리에서 한 시의원 예비후보자가 본인 이름을 적은 홍보판을 가슴팍 높이로 들고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연신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한동안 애처롭게 지켜봤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옷이 흠뻑 젖었지만, 후보자는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고생을 감내할 만큼 마음 자세가 돼 있으니 표를 달라는 일종의 극한 퍼포먼스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하루가 짧다. 그런데 정작 표를 줄 유권자들은 누가 나오는지 조차 모르니 이런 부조화가 또 있을까 싶다. SNS 등의 발달로 홍보 수
명경대
최동열
2022.04.12
-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침략한 러시아로부터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과정에서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직면한 을씨년스러운 상황이 영상과 음성으로 고스란히 담겨 전파되고 있다. 불과 한달여 사이에 평온한 일상으로 활기찼던 거리에는 민간인 시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고, 근사한 건축물은 문명이 전혀 없었던 듯 형태를 잃고 흘러내려 도시를 압도한다. 전투가 훑고 간 참담한 피해와 통곡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무기를 든 평범한 시민까지 합세한 항전이 갈수록 치열하다. 크림반도 회복 전망 가능성이 나오고 있으나 그만큼 더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명경대
박미현
2022.04.11
-
얼마 전 한 금융사가 공채 지원자들에게 요구한 자기소개서에 본인의 MBTI 유형이 무엇이고, 직무에 어떤 도움이 될지 적게 해 화제가 됐다. 또 몇몇 회사에서는 직원 채용 때 이 MBTI를 묻는 경우가 있어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심리학자인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다. 외향-내향(E-I) 지표, 감각-직관(S-N) 지표, 사고-감정(T-
명경대
이수영
2022.04.08
-
“한없이 미안하고, 또 죄송합니다.” 지난주 강릉시는 이런 보기 드문 제목의 공식 자료를 배포했다. 그날 강릉시 공무원들은 십시일반 마음을 모은 성금 1713만원을 동해시에 전달했다. 지난달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동해시에 심대한 피해를 유발한 데 대한 사과의 뜻이다. 동시에 동해시내 주요 가로변에는 이색 현수막이 내걸렸다. ‘옥계 산불로 피해를 입으신 동해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조속한 복구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옥계면민들이 내건 것이다. 옥계면민들 또한 모금운동을 벌여 마련한 성금 3500만원을 동해시에 기탁했
명경대
최동열
2022.04.05
-
권력이 돈과 쉽게 교환되는 시대를 아직 마감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교활한 수법으로, 더 은밀한 방식으로 권력형 비리는 진행 중이다. 불과 5년 전에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했으며, 사법계와 국회의원이 얽힌 토건사업 ‘50억 비리클럽’은 수사 중이다. 차기 대통령 가족은 주가 및 부동산 문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고위층 권력가의 비리를 견제하는 유일한 기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인데 정권교체기에 존폐를 논하는 일이 벌어져 우려된다.‘공수처’는 권력형 부패와 비리 청산의 상징과도 같은 용어다. 1996년 11월 참여연대가 ‘
명경대
박미현
2022.04.04
-
중전마마 특수활동비 이야기가 아니다. 혜경궁 김씨 법인카드 이야기도 아니다.1795년 정조 을묘원행(乙卯園幸) 얘기다. 이 해는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이 한 해였다. 화성행차는 정조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을 찾아뵙고 어머니 회갑잔치를 신도시 화성에서 하기 위한 8일 간의 거둥길이었다. 하지만 그냥 환갑잔치 여행길이 아니었다. 재위 20년간 쌓아 올린 위업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신민들의 충성을 결집시켜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치 이벤트였다.그 백서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다. 기록
명경대
남궁창성
2022.03.31
-
유종지미(有終之美).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해서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뜻이지만,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 그러니까 시작은 거창했지만, 결국 보잘것없이 끝맺음을 했다는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상대적 개념인 셈이다.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정작 물러날 때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때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스타 정치인으로 지내다가도 정작 정계를 떠날 때는 초라하게 퇴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수받을 때 떠날 수 있어
명경대
천남수
2022.03.30
-
‘봉행무사(奉行武士) 강(岡) 씨에게 전합니다. 우리들 신세가 길하지 못한 연고로 큰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꼬박 십여 일을 보내고 일본국에 표류해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은혜가 태산이나 바다 같이 높고 깊습니다. 이제 만리 밖으로 헤어지면 어찌 또 볼 날을 기약할까요. 봉행무사께서는 천수를 누리시고 자손 대대로 평안하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조선국 안의기(安義基) 씀.’ 이 편지글은 203년 전, 조선의 한 선장이 일본 돗토리 번(鳥取藩)에 남긴 감사 인사장이다. 편지의 주인은 당시 강원도 평해(현재 경북 울진군)
명경대
최동열
2022.03.29
-
요즘 정가에 두 대학이 화제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4명의 위원 구성을 둘러싸고 서울대, 50대, 남성 위주인 ‘서·오·남’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13명을 차지한 서울대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강원도 춘천의 한림대를 졸업한 것이 위원장감이 되느냐 자격 유무로까지 번진 것이 또 하나다. ‘누구든지 학력을 따지지 않고 정치할 수 있어야 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강조한 박 위원장은 재학 중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알려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기여했다. 둘 다 ‘능력’을
명경대
박미현
2022.03.28
-
군 생활에 대한 남자들의 기억은 특별하다. 듣는 사람 불편한 줄도 모르고 복무시절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읊어대고, 때론 경쟁을 하듯 고생담을 늘어놓는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에서부터, 인민군과 교전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스토리까지 등장한다. 그만큼 군 생활은 별난 인생경험이기 때문일 테다.화천군 상서면 사방거리는 화천 사내면 다목리, 인제 서화면 천도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전방 군생활의 무대다. 춘천에서 화천을 지나 북쪽으로 20여 ㎞를 달리다 보면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사방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 일대에는 7사단, 15사단, 27
명경대
이수영
2022.03.25
-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북악산이 반갑게 마주한다. 북악산을 병풍 삼아 이순신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나란하고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편에 청와대가 자리하고 있다.서울시청에서 청와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경복궁 동쪽 담장을 따라 삼청동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시냇물 소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건춘문 앞이다. 맞은편에는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던 보안사에서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분관으로 변신한 적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국립 민속박물관 앞에서 저만치 청와대와 감사원
명경대
남궁창성
2022.03.24
-
모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는 깊은 산중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주된 소재다. 꽤 오래전에 방영됐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출연자는 거의 옷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매미채로 말벌을 잡은 모습이 그것이다. 키우는 꿀벌을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말벌은 꿀벌 집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애벌레와 꿀을 약탈해가는 무서운 천적이다.꿀벌은 꽃에서 꽃가루를 옮김으로써 많은 식물이 번식할 수 있게 해 주는 곤충으로 집단생활을 한다. 특히 꽃의 꿀을 모으기 때문에 양봉을 통해 꿀을 얻는 인간과
명경대
천남수
2022.03.23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동해시 묵호 일원 산불피해 현장을 살피면서 ‘부흥횟집은 안탔냐’고 물어 화제다. 지난주 현장에서 심규언 동해시장으로부터 피해 보고 및 지원 대책을 건의받은 뒤 불쑥 던진 말이라고 한다. 당선인이 콕 집은 부흥횟집은 묵호항 지근거리에 있는 오래된 횟집이다. 상호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당선인에게는 추억의 맛집임에 분명하다. 이에 앞서 울진에서는 중국집 ‘신신짬뽕’에서 점심을 먹었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낸 산불이 번졌을 당시 진화 현장에 무료 식사를 제공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은 집이다.전국의 맛집 가
명경대
최동열
2022.03.22
-
6월 1일 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낸 입지자들이 성시를 이룬다. 강원도지사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1995년 31대부터 현 38대까지 4명이 뽑혔다. 최각규, 김진선, 이광재, 최문순 순으로 이번에 39대가 된다. 2명은 3선을 했고, 다른 2명은 1선이었다. 누구라도 출마할 수 있는 선출직이 된 지 채 30년이 안 됐다. 그 전엔 임명직이었으니 아무나 지사가 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앞장서서 협조한 경우만 도지사로 입신출세했다. 강원도지사 14명 중 한국인은 12명이었다.가장 오래 강원지사를 해먹은 이규완은
명경대
박미현
2022.03.21
-
1983년 열린 제4회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국민은 기적을 경험했다. 세계대회 4강은 당시 한국 축구로선 상상하기 힘든 꿈같은 기록이었다. 스코틀랜드와 멕시코, 호주, 우루과이 등 축구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준결승에서 브라질과 만나는 그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국민은 환호와 박수로 감격의 시간을 즐겼다.당시 현지 언론들은 대표팀의 활약을 ‘붉은 복수의 여신(Red Furies)’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이며, 축구 서포터즈 클럽의 이름 ‘붉은악마’는 여기서 비롯됐다. 4강 신화를 이끈 명장은 춘천
명경대
이수영
2022.03.18
-
정원사 곽탁타는 장안 풍악마을에 살았다. 나무를 심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나라의 권세 높은 양반들과 부자들이 그를 찾았다. 탁타가 나무를 가꾸거나 옮겨 심으면 죽는 일이 없었다. 항상 잎은 무성하고 열매는 풍성했다. 한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가꾸는 나무는 유독 건강한 데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나무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돌보아줄 뿐입니다. 나무 본성이라는 것은 뿌리는 바르게 뻗으려고 하고 북돋움은 고르길 바랍니다. 또한 흙은 옛것을 좋아하고 뿌리는 꼭꼭 다져주기를 원합니다. 이런
명경대
남궁창성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