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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앉아평면을 응시한다햇살이 실눈을 따라 다닌다집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자유를 속박 당한 먹이에모른 척 눈을 마주쳐 본다등짝에 달라붙은 그림자를 업고현관을 지나 달밤에 길을 나섰다한 사람만 알던 내 이름이 바뀌는 순간어둠이 더디 내려두 개의 보름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침묵을 깨운 경계의 바람은 자유롭다낯선 창가에서 봄을 기다리는내 이름은 길냥이집사의 안부가 궁금하지는 않은 이유다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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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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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 있냐며비우고 버려야 된다고툭툭 내 뱉지만버려진 귀물을 보았는가?뒤숭숭한 세상이라지만연당을 차분히 걸어보자오목한 잎은바람결 한점 없는 날도왜동으로 뒤뚱남으로 뒤뚱 하는지를이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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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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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지날수록 추억으로 머무는 윤슬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고독의 비행이 인식을 나르면멀미를 솎아내어 완성되는 여행갈매기는 호수 위로 돛을 올리고두 해쯤 살았을,풍만한 수풀에서 뛰쳐나온 오리 하나목적 모르게 자맥질하여 부표를 잡을 때허공을 쫓으며샛바람은 나뭇잎과 술래잡기를 하고하늘가 한 방울 눈물 떨어지면소스라치는 지상의 꽃들 고갤 굽히고엄마 잃은 투명한 기억의 어린아이가물끄러미 호숫가에 던지는 가엾은 파장안타이오스*가 소년의 손을 잡는다뒷걸음치며 훌쩍 떠나려는 아이의파란 미소가 새 한 마리를 유혹할 때충만한 비창이 행인들을 눈물짓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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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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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곁은 푸른 울타리였다//네 마음을 겹쳐 쓴 문장에서는 연필 깎는 소리가 났다써도 자꾸 뒷문을 열고 나가는모르는 눈으로 걸어오다 발목이 다 젖어있는//쏟아진 혼자를흘러내린 나를너의,한 쪽 어깨를넝쿨 삼아 천둥과 번개를 피어올리곤 했다//네 왼팔과 내 오른팔 사이틈이 생겼다면그 균열이 결국 봄날의 소란이었다면//너와 나는,어떤 날씨에 옮겨 심어야 다시 따뜻해질 수 있을까//곁이 자라는 식물과 저녁 사이화분 하나 놓여있다//나무중심을 뚫고 나온 매미 울음을 지나쓸쓸한 고립을 건너오는 뒤편을 향해곁이 곁을 밀고 들어오는 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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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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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마을안길을 그 집 여자 홀로 걸어 나가네모가 난 발자국과 겹쳐져 자꾸 뾰족해지는 길버스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오늘은 옥수수밭을 매기로 했는데물푸레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으니어릴 적 꿈이 되살아나네물푸레나무 가지를 잘라 새총이나 만들까물푸레, 물푸레, 물푸레,자꾸 부르다 보니 아득한 종소리 같기도 하고숨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 같은바람이 이네쓸쓸한 젊은 날을 뒤돌아보며그 집 여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나는, 그늘 농사나 지어야지느리게 느리게 지어야지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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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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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심기 끝나고,모내기도 마치면잠시 숨돌리는 농삿일이런 날 마지막 남은 콩으로태현이 어머니 두부 만든다콩 심었으니 묵은 콩은 두부나 해먹자며,농사꾼 팔자 이런 날도 있어야 휜 허리 편다고장작불 지피고 콩 갈아 익히는 동안유월 햇살은 맑고 푸짐하다고추 곁순 따고, 피사리에 참깨들깨 심다 보면삼복더위도 남의 집 제사마냥 지나갈 터이니,핵핵대며 가을걷이까지 달려갈 숨찬 길이 앞에 남았어도오늘 같은 날 두부 한 모, 순두부 한 양푼 없이 어찌 넘기랴간수 넣고 살살 저으면 엉기는 두부처럼아들 친구들 기운 차려 힘든 농삿일 잘 넘으라고태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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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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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자는 좀체 짖지 않는다명상을 끝낸 연잎은 물기를 담아두지 않는다내가 너 때문에 젖는 일은 없을 것이다.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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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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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바래지는 새벽부서질 이름 향해 날려 보낸 파랑새가희미해진 주소에서 되돌아오지 못해먼 통 밀어내는 들판 어디에선가울다 떨구었던 눈물이풀잎마다 스며들지 못해 맺혔겠지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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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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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때마다 정이 든다쪽빛 두른 바다씻어 하얗게 밀어붙인 모래자락그 순결한 가슴에누군가 나란히 찍고 가버린 낙관인가다정한 발자국들저만치 굽이 휘돌아 숨차게 달려와숱한 젊음을 쏟아놓는 열차조가비 수놓은 흰 카펫을 걷는 연인들이여해조음이 낮게 피어오르는 꿈길꿈꾸는등푸른 고래가 몰려온다.정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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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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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허전한 오월 한나절근원을 알 수 없는 햇볕이우거진 녹음을 얼싸안았다가바람결에 실려 떠나가는데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청명한 하늘에번뇌를 모는 짓궂은 구름이누구도 거스리지 못할 깨달음으로세상만사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며햇살이 비추는 강에 비를 내리면나는 우주에서 내리는 꽃비를여린 가슴에 소중히 담습니다.김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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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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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이 밝았다새로운 하루생명의 싹이 돋았다이미 온몸 삐걱거리니언제까지 일출 보려나핀 꽃을 지나치지 말고향도 맡고 말도 걸어 보자며칠이면 그 꽃 못볼것이니아내도 또한 그렇다거친 손 잡아주며늘 반가운 손님처럼 대하자인생 꽃처럼 시들것이니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자우리 앞으로 몇번 만나겠냐며무상(無常)을 염두에 두자곧 수저도 무거울날 있으려니이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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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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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원효대사가 붓다가 사는 집을 지었다돌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손님을 맞는다하늘에 명줄 하나 매달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산의 갈비뼈로 만든 대웅전 뜨락에룸비니에서 온 마른 바람 몇 점 졸고 있다바위의 눈빛 속에 머물러 있던 먼 그림자먹구른 낀 마음을 열고 모두에게 소금이 되게 해주오사막의 계곡에 허기진 중생들푸른 오아시스 입맞춤으로 인도해 주세요도반이 되어 함께 돌 속으로 걸어간다.갯벌의 목덜미에 피어나는 해넘이 긴 그림자佛자 하나를 허공의 가지 끝에 걸어 놓고부처의 씨앗 하나 심장 속 깊이 싹틔우고.주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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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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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방지턱에 생각이 서 있다화려하게 정지된 언어야생마의 조련된 듯한 기술적 몸짓유통기한 없는 기억들밤이면 닻을 내리지 못하는 달은허공에서 배 불룩하다달빛이 걸려 서걱이는 나뭇잎소리에내잠은 별로 떠 흔들린다동살이 오른 햇살이 뜨면방지턱에 걸렸던 만삭의 생각들이발갛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세상의 푸른 신호등 앞에서반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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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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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새도 모처럼 벚꽃 속에 누워 잠이 들고꽃들도 밤에 안겨 잠들었습니다봄밤은 생기를 불러와 밤새 새와 꽃들에게불어넣고 있습니다그 아래 잠 못드는 나 홀로 앉아 있습니다내 잠은 어디로 떠돌고 있는지 기척이 없고내게 내일의 생기를 불어넣어 줄잠은 나를 잊었나 봅니다내일을 새롭게 채우려고새들을 자면서도 똥을 싸고꽃은 자면서 꽃잎을 흘립니다풀 수 없는 숙제 같은 내일이 또 오려고밤이 깊어갑니다백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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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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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의 집으로만 떠돌다새집에 문패를 다는 날코로나로 지구촌이 몸살 앓는데좋은 집이 무슨 소용이냐고끝까지 반대를 하고 나서는남편을 설득하느라봄은 오는 줄도 몰랐다젊어서는 일에, 가난에 파묻혀내 집이란 걸 엄두조차 못 내고달빛에도 시린 이순에 겨우꿈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다창 너머 그와 눈이 마주쳤다새집에 드는줄 어떻게 아셨는지윤사월 초이레오후 세시 반 아직 대낮인데벌써 오시다니요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딸아, 밥은 먹었냐최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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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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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세상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성격이 온순하고주름이 많다그 어마어마한 주름의 골짜기두 손이 두 눈인 아이들이그 주름의 골짜기를말없이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지금은 오월,창밖에는 코끼리 귀처럼 넓어지는잎사귀들의 계절아이들이 밤의 나뭇가지에다꽃을 매달고등불을 매다는 것 또한 보았다그리하여 마침내나뭇가지마다 빛이 되고아침이 되고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이 신록이 그대에게서 오는 것을,슬픔을 건너간절한 사랑으로그대의 손끝에서 오는 것을조성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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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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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이름의 프리즘이배꽃 눈썹 끝에 이슬방울로 반짝인다2%의 생각이 다른 한 아이에 엄마라는존재론적 질문들은 크로스 오버다까끌까끌 매웠던 삶의 도돌이표다아이는 멈추지 않는 회전목마를 탄 듯초록꼬리별처럼 빈 행성을 떠돌 때물 젖은 삶의 심지마다 등불을 켜는 그녀그 빛으로 쌓아 올리는 배꽃 같은 기도문은외침이다 서사다비바람이 칠 때마다 심장 한쪽이 찢기지만우주에 가려진 별의 미래는 무한대다엄마라는 사랑의 프리즘이 배꽃처럼 환하다현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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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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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없어달고 기뻐할 가슴 하나가 없어상석 왼편 모서리 저버린 수선화 곁에뿌리 째묻어놓고 왔네한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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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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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한참 지난 어느 날 집에 갔다가찬장 속에 놓여 있는 카네이션을 보았다꽃은 이미 다 시들어 버리고 꽃대에 붙은“어버이 감사합니다.”라는 글씨만 선명한,철들기도 전 객지에 나와어버이날 다가와도 어머니 가슴에다꽃 한 송이 못 달아 드렸는데동네 청년들이 달아준 카네이션을어머니는 버리지를 못했던 것이다이제는 가슴속 한 곳에아픔으로 남아 있는 카네이션 한 송이어머닌 저승에서도 오월이 오면카네이션 한송이 들고 마당을 들어서는이 자식을 기다리고 있을까때늦은 후회지만이번 어버이날에는어머니 산소 찾아 가그동안 못 달아 드렸던 카네이션한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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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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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서대 우통수 있으니산을 두 곳 너머 상원사 입구에서는문수동자 만난 세조임금 이야기와스님의 길 따라천년고찰 월정사 금강연金鋼淵 지나 진부역 지나다보면수다사水多寺 목탁소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아늑한 전선을 감아 도는 대음강大陰江 만나동쪽 연화진에 이르러 산과 산이 마주하고아리랑 노랫가락 한 소절 생각나는 진탄나루에서바람 소리 따라 잠든 강물 소리가 가슴을 스며들고 있네*연화진(淵火津):지금은 동강으로 불리고 있다.정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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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