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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거북선을 천하무적이라고 믿었다. 배의 앞에는 용의 머리가 우뚝하고, 외벽과 지붕은 철갑을 두른 거북선의 위용은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특히 지붕에 송곳 같은 것을 꼽아 월선을 방지한 장치는 조선 전함의 높은 수준을 가늠케 하고 있다. 패배를 모르는 거북선의 존재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상징이기도 했다. 다만 ‘거북선’이란 담배가 등장하면서 거북선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희석되는 아쉬움도 남겼다. 거북선의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맹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
명경대
천남수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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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통을 중시하던 옛 선비들에게 가장 가혹한 계절은 한여름 혹서기였다. 삼복염천, 말 그대로 펄펄 끓는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점잖은 체면에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시원한 계곡물이나 바다에 뛰어들 수도 없는 일. 그저 우거진 나무 그늘을 찾거나 손부채 바람에 의지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유행한 피서법이 ‘탁족(濯足)’이다.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李慶胤·1545∼1611년)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에 그 정경이 잘 묘사돼 있다. 나이 지긋한 선비가 잎 무성한 나무가 그
명경대
최동열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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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초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고 ‘대통령 퇴진’ 구호가 등장해 심상치않다. 대학생진보연합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습시위를 4월 대검찰청에서 벌인데 이어 7월 18일 성명을 발표했다. 7월 30일에는 대학생과 시민단체 등에서 ‘등록금 인상’과 ‘전쟁정책’ 중단을 외치며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통령직 퇴장을 외쳤다.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공개적인 구호 시작은 민심이 격랑으로 들어가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지금 국내 상황은 물론 글로벌 정치사회경제는 방향성조차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명경대
박미현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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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을 위험과 마주해야 했던 동해안 어촌에서는 물고기 종류만큼이나 많은 금기가 있었다. 구운 생선을 뒤집지 않았고, 배에서는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다. 물고기를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속설을 믿고 생활 속에서 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영물로 여겨졌던 호랑이와 뱀도 직접 이름을 지칭하지 않았다. 다만 ‘큰 짐승’, ‘긴 짐승’ 등으로 에둘러 불렀다는 것이 민속학자들의 설명이다. 뱃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뿌리 깊은 풍속이어서, 미신으로 가볍게 여기기에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그중 가장 보편적인 금기사항은 여성의 조업이었다. 여
명경대
이수영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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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제13대 국회 전반기 의장을 지낸 김재순 전 국회의원이 별세했다. 당시 한 신문은 부고를 전하며 ‘토사구팽 남기고 은퇴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고인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듬해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부정축재 혐의를 받고 불명예 은퇴했다. 그는 당시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를 잡으면 쓸모가 없어진 개는 잡아 먹는다)’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별세후 ‘어느 노정객과의 시간여행(우암 김재순이 말하는 한국 근현대사)’이라는 책이 발간됐다. 생전
명경대
남궁창성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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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10시에 한국 판문점에서 영문, 한국문 및 중국문으로써 작성한다. 본 정전협정의 일체 규정은 1953년 7월 27일 22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3년여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쟁을 멈춘다는 정전협정문이다. 정전협정서 끝에는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트 W. 클라크의 서명이 담겼다.정전회담은 협상 체결 2년 전인 1951년 7월 개성에서 시작됐다. 회담은 한때 전쟁 포로 처리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정
명경대
천남수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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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동해안 고유의 자연자원인 석호(潟湖)를 말할 때 가장 안타까운 호수가 있다. 강릉시 강동면 시동리 ‘풍호(楓湖)’이다. 단풍이 고운 호수라고 해서 이름 지어진 곳이었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금은 호수가 사라지고, 그리움을 달래는 이름만 전하기 때문이다. 강릉지역 향토사료인 ‘임영지’ 등에 따르면 풍호는 둘레가 5∼6리에 달했다. 적어도 40∼50년 전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1972년에 주변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고, 석탄재 처리장으로 사용되면서 호수는 매립됐고, 지금은 그 위를 골프장이 차지
명경대
최동열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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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리이다. 내 스마트폰의 각종 데이터를 통제할 권리 역시 내게 있어야 한다는 ‘데이터 주권’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과 인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인격체와도 같아 급변하는 정보통신환경 속에서 사생활 보호 신뢰 수준은 가격과 마찬가지로 제품 선택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사과 로고가 자물쇠로 이미지가 바뀌는 애플사 광고 역시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 마케팅과 수익모델에 닿아있다
명경대
박미현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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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식사 자리에 동석한 여성이 깻잎 장아찌를 쉽게 뗄 수 있도록 남편이 젓가락으로 도와준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나. 춘천 출신 가수 노사연이 한 예능프로에서 제기해 이슈가 됐던 ‘깻잎 논쟁’은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됐다. 다른 여성을 도와준다는 것은, 아내 입장에서 여간 서운하고 찝찝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깻잎을 떼어준다’는 다정한 행위는, 아내가 남편 친구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주는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동석한 일행에 대한 단순한 배
명경대
이수영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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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주(1786~1841년)가 훈련원 판관 상득용(생몰연대 미상)에게 편지를 보냈다. “낙마해 가마에 실려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얼마 후 축하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일이란 익숙해지면 교만해지고, 교만해지면 소홀하고, 소홀해지면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판관께서 승마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밤중에 혼자 좁은 길로 말을 몰고 가셨겠습니까?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하늘은 교만함과 소홀함은 실패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습니다. 모든 일에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마치 근심거리라도 생긴 듯 전전긍긍하신다면
명경대
남궁창성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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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불러도 우영우, 거꾸로 불러도 우영우”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가 하는 말이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로펌에서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처음 방송될 당시에는 0.8%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지난주 방송에서는 10%를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가 지닌 자폐스펙트럼은 아동기에 나타나는 사회적 상호작용, 의사소통의 장애를 보이는 뇌신경정신질환이다. 눈을 잘 맞추지 못하기도 하고, 표정
명경대
천남수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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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밤낮으로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체가 산처럼 쌓이던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대(철원 김화 평강)’에 주둔한 UN군과 국군 사이에 괴질(怪疾)이 돌았다. 각종 자료에는 UN군 측 피해만 따져도 3200여명이 걸려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장에 원인 모를 질병까지 창궐, 젊은 군인들이 피를 쏟으며 속수무책으로 스러졌으니 참상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괴질의 공격 대상은 피·아 구분이 없었다. 당시 중공군이 한강 이남으로 대공세를 펼치지 못한 것이 괴질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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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열
20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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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중 하나는 민주국가에서 좀체 찾기 어려운 독재자적 태도이다. 5공화국으로 정계 복귀한 드골은 수세에 몰릴 때마다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로 여러번 정치적 비판을 피해 갔다. 마침내, 그의 정치역정도 1969년 4월의 국민투표 부결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잘못 알려진 그의 어록 중 하나가 1958년 알제리 수도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 “나는 여러분을 이해합니다”이다.알제리의 독립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제법 알려졌는데 오히려 정반대이다. 한반도의 10배 넘는 영토를 보유
명경대
박미현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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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서양 사람들은 상대방이 따라준 술잔에 입술을 대고 혀를 적신 다음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유목과 무역의 성행으로 낯선 이들과의 자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상대의 의심을 푸는 방법이 건배다. 술을 다 마시고 잔을 거꾸로 들어 보인 것이 건배의 유래라고 한다. 물론 동양의 건배와는 태생이 다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잔을 비우는 일은 소속감을 높이고 단합을 강조하는 술 문화의 하나다.특히 다 함께 술잔을 들고 잔을 비울 때 등장하는 건배사는 연대감을 다지는 대표적인 의식이다. 재치 넘치는 건배사는 술자리를 더욱
명경대
이수영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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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10일 일요일에 청와대 3대 실장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같은 해 2월 베트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세에 대해 “북·미 협상 재개 시기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연내 시한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도 진지하게 본다. 북측 입장도 고려하면서 가급적 조기에 북·미 간 실마리를 찾도록 미국과 공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7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서는
명경대
남궁창성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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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설레는 말이다. 본래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어로 단순히 휴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이름난 휴양지나 해수욕장에서 제대로 휴가를 즐기고 오는 것을 바캉스라고 여겼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바캉스라고 하면, 바다나 산 등에서 즐기다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에 영향을 받은 듯싶다.그런데 요즘은 바캉스를 떠나려면 각오해야 하는 것이 많다. 오가는 길이 교통난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숙박비는 성수기라는 특수(?)한 가격에 놀란다. 마음 놓고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근교나 집에서
명경대
천남수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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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이름은 뭘까.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답은 ‘맥령(麥嶺)’이다. 흔히 ‘보릿고개’로 불린다. 가수 진성이 지난 2015년에 발표하고, 미스터트롯 가요경연대회에서 소년 가수 정동원이 원곡자 앞에서 불러 눈물샘을 자극했던 노랫말에도 등장하는 그 ‘보릿고개’ 말이다. 가을에 걷은 곡식이 모두 떨어지고, 보리가 날 때까지 버티던 양력 4∼6월쯤이 되겠다. ‘동해안 시인’으로 불린 속초 출신 황금찬 시인은 ‘보릿고개’를 이렇게 읊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굶으며 넘었다/
명경대
최동열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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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심에서 대낮에 정치 거물을 총격 피살한 사건이 7월 8일 금요일을 뜨겁게 달궜다. 자신과 부인 사생활을 관리하지 못해 코로나19 봉쇄 중 술과 생일 파티를 벌여 ‘파티게이트’와 ‘거짓말게이트’로 비난받은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같은 날 사퇴했는데 이 뉴스마저 묻힐 정도였다. 70세도 넘기지 못하고 불시에 생을 마감한 아베 신조(1954~2022)는 생전에 한반도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했다.10선 의원에 90, 96~98대 총리를 지내고, 역임 후에는 여당 권력자로 오랫동안 국정을 좌우지하는 동안 ‘전쟁국가 일본’에 대
명경대
박미현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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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서 샘물이 솟듯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종이를 갖다 대면 90도로 휘어질 정도로 강렬하게 솟구친다. 낮 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도 바람 샘에서 나오는 공기 온도는 10도 안팎. 바람은 바위까지 식혀, 등을 대면 온몸이 시원하다.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얼음골’ 바람은 삼복더위가 되면 더욱더 차다. 더위에 지친 야생동물도 바위를 찾는다. 너구리와 오소리의 배설물 흔적이 보인다. 얼음골은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물이 흐르던 자연 동굴이 무너지면서 그 냉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와 생긴 것이라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예전엔
명경대
이수영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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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망치 소리가 멈췄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에도 두 달 가까이 계속됐던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면서 쿵쿵 쾅쾅 요란한 소음이 사라졌다. 대통령은 새로 마련된 집무실에 입주했고 기자들은 브리핑룸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구내식당도 문전성시다. 하나 둘 용산 대통령실이 국정 최고 지도자의 집무공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정작 파열음은 대통령 비서실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내외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과정에서 인사비서관 부인이 동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문제
명경대
남궁창성
202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