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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흩날리듯젊음도 피고 진다화려한 시절이란강렬한 허무이다뜨겁게 피어오르고장렬하게 멈춘다
독자시
김시화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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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산책길에봄이면 인사 건네던 할미꽃올봄에 사라졌다납치당한 흔적 남겨두고봄의 시간을 알려주던 할미꽃낯선 화단에 웅크리고 있겠다답답한 베란다에 갇혀 있겠다산책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그리워하다 그만시들시들 앓고 있을지도.
독자시
배정순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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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 딸만 낳아치마 속 고쟁이 속숨겨서 키우다가곱게 자란 큰 애기들하나씩시집 보내려얌전 살뜰 내미네
독자시
최영미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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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문패 아래 산 적이 있다온실에서 막 나와바람만 스쳐도 휘청였던제 터 잃고 남의 터에 몸 푼그 맘 내 모를까오면서 녹는 마음그 또한 내 모를까볕 한 올에도 눈물이 흐르던더부살이 속내말 안 해도 알지, 그 맘 내 알지
독자시
최명선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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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기 잠시 쉬며 물소리로 앉았으니세상사 주름 많은 눈꺼풀도 엷어지고메마른 가지의 새 움 눈물 아니 고이던가푸른 이 돋는구나 산골 물 저 소리들산색은 연둣빛 점점이 흩어지고나무에 새소리 두엇 풋내음이 나던 날맑아라, 하늘빛은 멀어서 은은하고복사꽃 지고 나니 봄도 이리 풀려나네물결에 떠가는 꽃잎 도원인 줄 알거나윤사월 햇빛 자락 푸름을 더하는데문 활짝 열린 뜰 앞 내 속 환히 보이것다참 좋다 일생에 몇 번 이런 날도 있구나그대 혹여 꽃잎 보고 내 집을 찾아들면큰 박주 항아리에 세속을 띄우리라근심도 맛 들이기 나름 종일 취해 보세나
독자시
남진원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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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동전 한 닢이 뒹군다누군가의 주머니를 뚫고 나온 동전뾰족한 슬픔처럼 떨어져 있다문득, 어리던 날부잣집 친구의 굴렁쇠 웃음소리가슴을 뚫고 들어온다내 주머니 속 십 원짜리 동전은부끄러워 발갛게 달아올랐다어젯밤 엄마 눈을 속이고돼지 저금통에 넣지 않았던 동전,그 동전 ‘달고나’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달고나’는 별 모양, 달 모양, 해 모양으로내 입으로 살살 녹아 들어간다오후가 되면 내 심장은 콩알만 하게 되고엄마 목소리는 천둥소리가 된다어리던 날 군침돌게 하던 동전 한 닢이자꾸 목구멍으로 넘어온다별 모양, 달 모양, 해 모양, 우
독자시
반혜지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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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뒷산 넘어 고개 숙인 벼를 손으로 훑으면봄여름 내내 개구리울음 농사에 이어 풀무치 울고논두렁에 다다른 운구차는 비밀을 품고 돌아가고문상 가는 발걸음은 발걸음끼리 뭉쳐 도랑이 되는데작은 울음은 울음끼리 뭉쳐 밤하늘에 둥그러지고낱알의 걸음은 재잘대다 밥상에 올라 볕살 펴는데
독자시
한승태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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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남자가 담 넘어 옆집 백목련에넋이 나간 걸 안 날울안에 남아있던 한 송이 자목련 툭, 졌다천지간에 핀 꽃들 허공중에 길을 잃고저문 바람에 위태롭다오진 욕을 먹는다 해도꽃이 지는 슬픔을 감출 수 있으랴자꾸 꾸역꾸역 눈물 나누나오직 북쪽을 향해서만 핀다는 저 하얀 꽃숭고한 사랑이라 말하지 마라비양심이라고 귀싸대기를 갈기니늦은 참회로 또 늦게 운다
독자시
강선영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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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 빗장 풀고찾아든 봄바람에푸성귀 바리바리난전서 봄을 판다검버섯찌든 얼굴엔웃음꽃이 환하다
독자시
이형식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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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자작나무 껍질에 연애편지를 쓰는 청춘에 대해그 청춘의 설레임에 대한 시를 쓰거나해당화나 동백꽃이나 그 꽃잎처럼 붉은찬란한 사랑에 대해 시를 쓰거나그도 아니면이백이나 도연명처럼 초월과 은둔과그 어떤 위대함에 대한 시를 쓸 줄 알았는데여전히 나의 시는 분노로 가득 차 있고여전히 쓸쓸하고 외롭고 또 가엾은 것들뿐이다세월호는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고일용직 노동자의 주검은 장례 전이니나는 언제쯤에 가 닿으면풀잎의 이슬에 비친 사랑의 애틋함이나소한(小寒) 들판에서 바람을 견디는 저절정의 경건함에 대해 쓸 수 있으랴
독자시
김남극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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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침묵한산 안으로 간직해 온분홍빛 사랑 노래봄빛에 풀어놓고선연히 봄날을 태워건네주는 봄 편지
독자시
김기옥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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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혹한 속을 나목으로 견뎌내고춘삼월 봄 입김에 못견뎌 터진 가슴화르르 하얀 불꽃 속으로 나비 떼가 날아든다보내고 돌아서면 후회로 젖는 가슴기다림 길어질까 보고 또 쳐다보고또 한 봄 흔들고 가는 바람 부는 날 벚꽃들불같이 급한 성격 피는 것도 불길 같고지는 것도 불길 같아 꽃바람 부는 날에걸어온 가로수 길에 쌀튀밥 같이 쏟아진다
독자시
박순자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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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니 봄이구나 들썩이는 봄의 들판농부들 쟁기 대신 트랙터로 밭을 가네빗질한 고운 들녘에 들일 손이 뉘신지꽃 피니 나비 날고 봄바람 시샘하네연분홍 물감 풀어 향촌의 봄 그리니바둑이 속없이 짖으며 저도 그려 달란다
독자시
임춘자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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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입 봄비는 연둣빛 짙게 하고생명의 대지 위엔 새 순의 용틀임들그래도 기다리던 비 행복 주는 마중물농염한 햇살 아래 들꽃은 만개하고온 누리 잎새마다 재잘거림 넘친다이 비는 만물의 희망 축복의 비 아닐까온종일 추적이며 내리는 빗물위에촌로의 작은 소원 방울방울 모이면달콤한 자양분의 맛 어머니의 품이다
독자시
이명호
20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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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를 펼쳐 읽는 어느 봄날 저물녘세상의 중력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마리배추흰나비날개바람 살랑인다.꽃심에 앉아도 미동 않는 꽃의 반응고요 깃든 날갯짓에 세상이 잠들었나가만히숨죽인 나도꿈속인 듯 아련하다.날아야만 나비라는 관념의 꽃밭에서날개 접어 꿈을 꾸는 영혼의 착한 무게꽃잎에마음을 더한딱 그만큼의 존재여.책에서 빠져나온 상념이 엄습한다나는 누구이며 나비는 무엇인가어느 봄날 저물녘에꿈꾸듯이 장자를 읽다
독자시
심재원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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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버려진 찔레꽃 가지꺾이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발바닥이 온통 상처투성이다오는 길 매웠으면 사는 길은 고와야지손목 잡고 집으로 와 꽃병에 꽂는다얼마가 지났을까구겨 넣었던 봄이 꿈틀거리면서시든 꽃잎 위로 살아나는 길그렇게 꽃의 한 시절은 열렸다가 닫히고아무렇지도 않게 꽃병을 비우려는 순간깊디깊은 심연에서살뜰히 죽어가는 곡진한 생의 뿌리정작 그 봄은 누구의 것일까찔레 가지는 찢긴 발로 꽃의 길을 만드는 동안나는 그저 꽃만, 꽃의 낯만 본 것이다
독자시
최명선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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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는 친구가보내온 편지 속에진달래 한 다발이활짝 피어 있구나머잖아내 가슴에도꽃물이 번지겠지.
독자시
김선영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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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한 봄날, 우연찮게 불청객이 되어앵두나무네 합동 혼례식을 구경 했었지요하얀 면사포 꽃 신부들은 수줍어하고요벌 신랑들은 연미복 팔락이며 들떠있더군요아들딸 주렁주렁 낳아 다복하게 잘 살라고축의금 대신 축복이나 해주고 돌아왔는데요사는게 다 그렇데요, 앵두나무집을 다시 찾아갔을 때지난 폭풍우에 바다로 나간 배가 여태 돌아오지 않았는지사내도 그 많던 새색시도 어디 가고 젊은 아낙 예닐곱볼탱이 빨간 자식새끼 품고 있는데, 맘이 참 그렇더군요파란 기와집 마당에서 미역줄기는 저 홀로 말라가구요
독자시
김영삼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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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칫,다가가지 못해봄을 놓고 갑니다달빛이 몸을 감아나부끼던 어느 날꽃말은 녹이 슬어 하염없이 쌓이고모서리에 남은 침묵바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백목련 꽃말: 이루지 못할 사랑*백목련 꽃말: 이루지 못할 사랑
독자시
이정화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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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길 건너이층집이 헐렸다 간판 달고 있을 땐몰랐는데뒤뜰이 보였다거기 우두커니 나무 한 그루거무튀튀한 맨몸으로빈 뜰 지키며 혼자 서 있더니어느 날 발그스럼 꽃망울이 보였다아직 이름도 모르는데오며 가며 말 걸어 주었다넌 꽃 피울 생각하며추운 겨울 홀로 견디었구나그래, 꽃 피고 나면 맛있는 열매가 달릴 거야주문진 봄바람은 거칠고 사나워장독 뚜껑도 날리는데용케도 분홍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곱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로칭찬해 주고 싶은 저 살구나무엷은 분홍 꽃잎을 온 동네 흩날리는데집 팔고 이사 간 주인에게편지를 보내는
독자시
이구재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