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시조시인

▲ 이흥우 시조시인
▲ 이흥우 시조시인

노인들을 걸어 다니는 박물관이라고 한다.틀린 말이 아니다.지금의 8∼90세 노인들은 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과 6·25 한국전쟁을 몸소 겪어낸 세대다.농업 중심의 산업을 현대산업사회로 바꾸어낸 제1세대다.모두 몸으로 겪어냈으며 그 세세한 내역들은 말과 글로도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각으로 체득했다.

이들이 이제 유명을 달리해가고 있다.이 소중한 역사유산을 전할 길은 그들이 체험하고 느낀 이야기들을 글로 보존하는 일이다.우선 짧은 생이지만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찾아 기록해봤다.막상 글로 남기려고 하니 떠오르는 주제가 별로 없었다.노인복지관에서 이 취지를 이야기해도 선뜻 나서는 어른이 별로 없었다.몇 차례 의논 후 나오는 주제들은 대개 생소하고 뜻밖이었다.어린시절 기억으로 써낸 이야기지만 긴 세월을 두고 몸소 체험한 내용인지라 구체적이고 다양했다.지금 당장에라도 재현가능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기능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았다.돗자리를 매는 일,삼베,무명 등 길쌈이야기,논에 물을 대기 위한 보 만들기,수채 파기,산야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찾아 뽑아내던 실과 끈이나 밧줄 만들기 등 오늘의 기계문명 시각으로 보면 별로 소용없고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다.곰곰이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그 방법을 기계화한다면 자연에서 얻는 이익이 적지 않을 것이다.현대 과학과 접목하면 새로운 산업소재며 천연섬유,식품,의약품,화장품 소재도 찾아질 수 있다.야영이나 등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도 있었다.물과 공기,토양 3대 오염문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심각하지 않았다.주거환경이 좋아지면서 수세식화장실이 물과 토양오염의 주역이 되고,자동차와 공장이 공기오염원으로 부상했다.이렇게 되어가는 온 과정을 오늘의 7∼80대는 온몸으로 온전히 체험했다.이들의 체험을 역으로 되돌아보면서 과정마다 개선해간다면 오염 해결의 단초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발상의 중요한 기초를 노인들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박물관은 보존·전시만으로 그 진가가 모두 발양되지는 않는다.온고지신의 생각으로 창조의 바탕으로 활용할 때 더욱 값이 나가게 된다.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옛 자취를 보존하려는 근본 이유다.살아있는 박물관들이 사라지기 전에 보존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얼마간의 비용이 들더라도,배움이 많고 적고 간에 노인세대가 기억하는 능력들을 기록해두는 일을 서둘러야 하겠다.지금의 7∼80대는 평이하게 한 세상을 살아온 세대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혹자는 어느 세대든 경험은 모두 소중하다고도 할 것이다.물론 그렇다.다만 산업급변 시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체험,몸으로 간직한 세대는 전무후무하기에 해 보는 제안이다.2020년이 반을 훌쩍 넘어가면서 초조한 생각이 든다.저 살아 걸어다니는 박물관들이 언제까지 남아 계시려는지….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