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박한 예술의 전초기지 마을극장 DMZ”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내일 인제 서화리서 개막
스티로폼 초소형 GP 1인 관람
주민제작 영화 상영·구술 채록
분단·마을 주제 작품 전시도
“영화가 로컬 만나 시너지 발휘
마을 대상화 아닌 주민이 주체”

관객이 너무 많이 몰릴까 부담된다며 유명 감독의 방문계획을 알리지 않는 영화제가 있다.영화제 행사장에는 화려한 리무진 대신 어르신들의 보행기가 일렬로 주차된다.한 편에서는 한 할머니가 “난리(6·25 전쟁) 때는 이렇게 술을 만들었다”며 밀주를 빚어 보인다.전세계 어디서나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진행된다.북한 내금강에서 불과 20㎞ 떨어진 최북단 마을,인제 서화리에서 열리는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이야기다.27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내달 12일까지 인제 서화리의 작은 마을에서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영화계가 전에 없던 암흑기에 돌입했다.이런 시기에 이 영화제는 매달 끄트머리(월말)에 꾸준히 열려 올해만 일곱 번 열렸다.영화제를 기획한 신지승 영화감독은 “규모,자본,걸작,대가,스타가 아니라 생활,주민,마을과 결합한 마을영화라는 개념 아래 작고 차분하며 대화가 있는 영화제를 추구한다”고 밝혔다.매달 여는 것을 목표로 한 가장 작은 영화제는 최북단 마을이 갖는 분단의 정서를 한데 모아 고유 콘텐츠를 만들고 생활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복원해나가고 있다.이번 행사는 올 한 해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은 ‘GP(초소)에서 영화를 본다’로 더욱 인원을 제한해 열린다.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스티로폼으로 초소형 GP를 만들어 1인 관람이 가능하도록 했고 가족별로 관람할 수 있도록 야외 영화관도 마련했다.마을주민과 외부인 관람은 별도로 구분했다. 개막작은 연송아 감독의 ‘역할들’이다.김밥팔기 등 투잡을 하며 어렵게 무대에 오르는 연극인들의 실제 생활을 담은 작품이다.또다른 개막작 ‘타란튤라의 춤바람’은 서화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출연한다.지난해부터 제작된 영화로 분단과 코로나로 인한 강박관념을 떨치지 못한 주민들이 춤바람이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강원문화재단 등이 후원한 ‘강원도민 온라인 영화제작’ 작품도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 기간 영화,미술,미디어,공연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30여명이 이곳을 찾을 예정이다.권위와 규모 대신 사람 간의 대화를 중시한다는 영화제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남북합작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고 북한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해 온 이정 소설가,제주 4·3 사건을 최초로 다룬 조성봉 다큐 감독,노동현장에서 시를 쓰는 영월의 고철 시인,김주표 전각작가,독립영화 ‘돼지의 최후’를 만든 한기중 감독 등이 함께 한다.올해 여름부터 레지던시 사업도 시작해 모두 14명의 작가가 다녀갔다.큰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작가들은 한두달씩 머물며 분단과 마을을 주제로 한 각자의 작품을 완성했다.제주에서 온 이재정(재주그라피 대표) 사진작가부터 인제지역 작가까지,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5개월 간 서화리에 머물며 완성한 설치,미디어,회화 작품들이 전시된다.올로 작가는 전쟁의 기억을 가진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한토막을 회화로 표현하며 신지승 감독은 기차레일 위 끊어진 동해선을 연결한 비디오설치 작품 ‘동해종단열차’를 선보인다.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는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지승 감독과 마을영화100 대표인 그의 아내 이은경 프로듀서가 함께 만든다.20년간 전국 100여개마을에서 로컬영화를 만들며 2017년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이들은 “코로나19로 로컬에 유리한 국면이 생겨났지만 사실 로컬은 애초부터 국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올해부터는 영화제 이름에 ‘국제’라는 이름을 더했다.지난 8월 ‘글로벌 언택트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해서다.지역과 무관하게 각자 촬영한 영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작품 소재는 타악기(북)다.영화제 기간 중간점검 보고회를 갖고 참여방법을 알리는 가이드 영상을 소개한다.가제는 ‘천사는 쏜살같이 여린 자를 구한다’로 내년 상반기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중국,인도,네팔,일본,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도 독특하다.삐라 벽화 따라 그리기부터 GP 체험,땅굴기차 체험에 밀주 만들기까지….6·25 전쟁 때 밀주를 담가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덤이다.전쟁 당시 마을주민들의 구술을 채록한 글과 인터뷰 영상들도 상영된다.1층에는 마을주민과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다.신지승 감독은 “영화와 기초예술이 마을과 로컬을 주제로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며 “마을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인 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극과 예술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승미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가 27일 개막해 내달 12일까지 인제 서화리에서 열린다.이 마을에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야외상영관과 GP를 본 따 만든 1인용 관람장소 등이 마련됐다.사진 오른쪽 상단은 영화 촬영 모습.왼쪽 하단은 마을 주민들이 출연한 영화 작품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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