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배 강릉본사 취재 부국장
홍성배 강릉본사 취재 부국장

산부인과가 흔치 않았던 1960~80년대. 집안 어르신이 임산부의 아이를 받는 ‘산파’셨다. 분만실이 갖춰진 가정집 형태의 진료실에는 임신 초기 부인부터 만삭의 임산부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드나들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어느날. 연거푸 딸을 일곱이나 낳은 엄마는 산후 진통이 조금 나아지자 귀여운 딸을 뒤로 하고 어두운 진료실을 몰래 빠져 나와 줄행랑을 쳤다. 아들 하나를 낳아야 했는데 또 딸이었던 것이다. 갓 낳은 딸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었던지 엄마는 딸을 두고 가버렸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 젖도 제대로 빨아보지 못했다. 산파는 진료비를 받지 못했지만 아이를 살리려 분유와 미음을 연신 먹이며 정성껏 키웠다. 손이 부족할 땐 친구들이 분만실 뒷방에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아이를 보살폈다. 이런 일은 자주 발생했다. 가을이되면 진료실 앞 문턱에는 쌀이며 콩 등 곡식이 한가득 놓여졌다. 그동안 아이만 낳고 진료비를 내지 못했던 엄마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산파는 10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왕진도 해야했다. 산골이나 어촌 등 임산부가 황급히 아이를 낳을 경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골집들을 방문해 아이를 받아냈다. 산파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임산부들은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아이를 낳는 불안감을 안심시키는 것도 산파의 큰 역할 중 하나인 듯 했다. 되돌아 보면 임산부들이 산파를 찾은 이유는 탁월한 분만 기술도 있었겠지만 친정 엄마가 안아주는 듯한 편안함이었던 것 같다. 요즘처럼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준다느니 하는 정부 정책지원이 없어도 당시 임산부들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만 갖춰지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강원도내 빅3 도시 가운데 하나인 강릉의 인구가 줄고 있다. 인구감소는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동해안의 수부도시인 강릉의 인구가 21만명대로 뚝 떨어져 인구절벽 시대를 맞고 있다. 6·25동란을 겪은 직후인 1955년 16만9523명이었던 시의 인구는 60년 20만4154명, 70년 22만5714명,2000년 23만3121명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10년 뒤인 2010년에는 1만5000여명이나 줄어들어 21만8503명으로 꺾이며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출생자 1641명, 사망자 1413명으로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많았으나 2020년에는 출생자 959명,사망자 1726명으로 사망자가 2배나 됐다. 인구쇼크다.

시는 인구 늘리기 정책으로 다자녀 가정 특별지원, 해산급여, 신혼부부 주거비용 지원사업을 비롯해 대학생 전입지원금,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등 연간 수백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그래서 인구 늘리기 정책을 펴기보다는 유동인구 늘리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구가 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는 청년실업, 자녀교육비, 집값 상승 등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인구가 늘어나야 사회전반적인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좀처럼 변화는 없다.

시 보건소가 매년 임산부의 날(10월10일)을 맞아 거리에서 “임산부를 배려하자”는 홍보에 나섰지만 올해 제16회를 맞은 임산부의 날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마저도 못하고 선별진료소 방문자나 모자보건실을 찾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출산지원 시책 홍보 안내책자 배부 정도에 그쳤다. 이런 시점에서 시의 인구 늘리기 정책에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강릉은 여성들의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바다와 산, 계곡 등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왕수다 공간’ 커피숍도 충분하다. 유기농 신선식품과 과일, 어류 뿐만아니라 맛집도 즐비해 ‘임산부 도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또 오는 2027년까지 부산, 인천, 수서 등과 연계된 철도가 놓아져 이를 이용한 ‘임산부 관광 패키지 열차’ 운행도 시도해 봄직하다.영국에서는 노인인구가 늘어나자 ‘고독 담당부’를 만들어 장관이 직접 관리토록 하고 있다.강릉시도 ‘임산부과’를 도입하는 등 과감한 행정을 시도해보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요즘 거리에서 아이를 업고 다니는 것보다 반려견을 업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해지고 있어 벌써 인구절벽의 공포를 느낀다.전문가들은 인구절벽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조언한다.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되돌아 보면 가을 날 산파 진료실 앞에 쌓였던 콩자루는 ‘위대한 빚’이면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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