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사회문제 해결 앞장서는 강원도 학생들
지역문제가 창업 아이템으로 이어져
시장조사부터 예산까지 꼼꼼히 계획
학교생활하며 느낀 불편함 개선 위해
교육감에게 직접 교육정책 제안하기도
프로젝트수업·동아리 활동하며 토론
작은 문제라도 해결하는 경험 쌓아야
미래교육 핵심 키워드는 ‘학생 주도성’
책임있게 참여하는 민주시민교육 중요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 아이디어를 내고, 교육감에게 직접 교육정책을 제안한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던 시대가 지나고, 관심 분야에서 실천적 행동을 할 수 있는 학생이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 청소년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민병희 교육감에게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청소년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민병희 교육감에게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음주운전·불법사이트 해결 나서

“코로나19 때문에 어디를 가도 출입 기록을 남겨야 하지만, 시각 장애인은 어떻게 출입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요?”

유봉여고 2학년 윤채나, 엄혜원 학생이 던진 질문이다.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장애인 인증 카드에 자동으로 출입 기록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넣는 것이다. 카드는 복지센터나 지자체에서 발급하고,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카드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담는다. 윤채나 학생은 “디지털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13일 강원도교육청은 원주 시티호텔에서 ‘강원도 청소년 사회적경제 소셜아이디어 한마당’을 열었다.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창업 아이디어까지 내보는 활동으로 9월부터 두 달여 간 진행된 활동을 마무리하는 자리. 옥계초, 대화중, 유봉여고, 원주고 등 총 16팀이 참여했다.

원주고 ‘스쿱놀이’ 팀은 원주가 강원도에서 음주운전 사고율이 높다는 것에 착안해 술병에 경고 문구를 넣자고 제안했다. 원주고 1학년 홍성주 학생은 “사소하지만, 사소한 방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시도해볼만하다”고 말했다.

대화중 ‘아사직전’ 팀은 지역에서 버려지는 농산물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겠다고 했고, 춘성중 ‘정의춘성’ 팀은 불법 사이트 접속 시 휴대폰 NFC를 활용해 자동으로 경찰에서 과태료가 부과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학생들은 그냥 아이디어만 낸 것이 아니라 사업이 필요한 이유, 시장조사, 예산안 등 사업 실현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지고 계획을 세웠다. 유봉여고 엄혜원 학생은 “방과 후에, 주말에 틈틈이 만나 준비했다. 자료조사를 해야 할 것도 많았고, 개인정보 처리 같이 고민할 것도 많았지만, 평소 수업에서 못해보던 활동이라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건물에 휠체어 경사로를 만든 양양고 학생들
▲학교 건물에 휠체어 경사로를 만든 양양고 학생들

# 학교 문제 해결 주체도 ‘학생’

지난 10월 21일에는 온라인으로 ‘청소년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지역을 대표하는 도내 고등학생 19명이 모여 진행됐으며, 학생들은 모둠 토론을 통해 ‘동아리 지원 활성화’, ‘고교 선택과목 수 확대’, ‘고등학생 대상 취업 안내 사이트 구축’, ‘학생자치 활동 활성화’ 등을 민병희 교육감에게 직접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예산 지원 및 자율성 확대(예산안을 포함한 세부 계획서 제출시) △학생 수요에 맞는 동아리 개설 △지역 연합동아리 활동 보장 등을 제시했다. 사내고 2학년 김주은 학생은 “동아리 예산과 지도해주실 선생님이 부족하다. 동아리 수가 적으면 진로에 맞는 동아리를 찾는 것도 힘들다. 동아리 지원이 좀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며 정책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 춘천여고 학생들의 ‘평화의 소녀상’ 교내 설치 활동
▲ 춘천여고 학생들의 ‘평화의 소녀상’ 교내 설치 활동

고교 선택과목 수 확대를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줄이기 △공동 교육과정 확대로 부족한 과목 개설 △온라인수업 활성화 등을 제시했고, 학생 자치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생자치회 활동의 자율성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들도 함께 자리해 학생들이 낸 의견을 경청했으며, 민병희 교육감은 “실제 진행 중인 정책도 있고, 보완해야 할 것도 있지만 학생들 의견이 다 의미있게 와닿는다. 교육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사회적 경제 소셜 아이디어 한마당 활동 장면
▲ 사회적 경제 소셜 아이디어 한마당 활동 장면

# 문제제기부터 해결까지 ‘살아있는 교육’ 실현

최근 들어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사회문제를 고민해보는 활동들이 늘고 있다. 올해 2학기에 2학년 학생들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 뒤 ‘강원도 청소년 사회적경제 소셜아이디어 한마당’에 참가했다는 대화중 김인숙 교사는 “이런 게 살아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문제 제기에서 결론 도출까지 모두 학생들의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수업을 할 때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활동의 핵심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며 원인을 분석하고,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에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양양고 3학년 학생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에 관심을 갖고, 체인지메이커 활동을 펼쳤다. 학교 시설물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지 살폈고, 본동에 휠체어 경사로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어 학생들은 교감과 지속적으로 면담하며 학교 예산이 어떻게 편성돼 있는지 질의하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경사로 설치를 이끌어냈다. 양양고 이재호 교사는 “진짜로 공감하는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한 노력들이 아이들의 삶과 세상까지 변하게 할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윤형순 장학사 역시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해보는 경험을 쌓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문제는 변화를 위한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 강릉 청소년 마을학교 ‘날다’ 활동 모습
▲ 강릉 청소년 마을학교 ‘날다’ 활동 모습

# 도교육청 학생주도성 향상 지원

MZ세대의 특징은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문제를 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미래교육을 위해 2015년부터 추진한 교육 프로젝트 ‘OECD 교육 2030’에서 말하는 학습자상도 ‘학생 주도성’과 ‘모두의 좋은 삶을 위한 기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이 자기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지난 11월 22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도 학습자 주도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자기 주도성’, ‘창의와 혁신’, ‘포용과 시민성’을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학생들의 얘기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외침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려면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도교육청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 공감능력 등을 키우기 위해 프로젝트 수업, 토론 수업 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2015년부터 사회적경제 이해교육, 체인지메이커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 정책토론회나 학생자치회 활성화도 같은 이유로 추진되고 있다. 도교육청 강삼영 기획조정관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사회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학교가 뒷받침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민엽 jmy409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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