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팬택의 박병엽은 전화기를 생산·판매하는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1991년, 회사을 퇴직하고 아파트를 담보한 4천만원의 자금으로 팬택을 설립한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선호출기(삐삐)를 출시해서 단번에 큰 성공을 거둔다. 휴대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98년 팬택은 모토롤라로부터 1,3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고 매년 3억 달러의 휴대폰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순풍에 돛단 격이었다. 2001년에는 자신의 회사보다 규모가 큰 현대 큐리텔을 1,600억원에 인수하여 “팬택&큐리텔”로 개명하고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큐리텔은 현대전자의 후신이란 이미지로 인지도가 높았고, 금융권에서 신용등급도 높았다. 게다가 500여명의 연구개발 인력도 확보했으며, 해외수출 판로를 얻게되어 팬택은 단숨에 국내 휴대전화 점유율 3위로 도약한다.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SK텔레텍을 2,900억원에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언론에서는 팬택이 LG싸이언을 제치고 국내시장 2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SK텔레텍을 인수하자 부채는 늘어났고, 팬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채권단은 2006년 12월에 워크아웃을 결정하고 증권선물거래소는 2007년 4월에 상장폐지를 결정한다.

이때부터 박병엽의 피눈물나는 재기가 시작된다. 당시 시가 4천억의 보유지분을 내놓고, 회사부채 8천억에 대해서는 보증까지 서면서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워크아웃 4년 8개월 만에 회사는 정상화 되었다.

2010년 스마트폰 사업에서 ‘베가’시리즈를 출시하여 150만 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하며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2인자로 등극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12년의 출시한 제품이 부진을 겪자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것이 적자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014년 8월, 2차 워크아웃과 법정관리가 시작되었고, 회사의 매각도 유찰되고 2015년 5월에는 벤처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팬택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사업이 성공하면 과감한 도전이었고, 실패하면 무리한 투자였다 라는 것이 업계의 결론적 평가이다. 풍객의 관점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실패하면 그의 선영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박병엽의 부모 묘소를 찾아갔다.
 

▲ 박병엽의 부친은 2005년 11월에 별세했다
▲ 박병엽의 부친은 2005년 11월에 별세했다

박병엽의 부친은 2005년 11월에 별세했다. SK델레텍을 인수한 해였다.

▲ 멀리 보이는 조산(朝山)의 모습
▲ 멀리 보이는 조산(朝山)의 모습

멀리 보이는 조산(朝山)의 모습은 멋있어 보이나 묘역의 전면은 좌우의 편차가 심한 경사진 곳이다. 중요한 것은 홍색선으로 표시한 맥로는 묘역 뒤에서 내려와 묘소에 멈추어 혈(穴)을 맺지 않고 앞으로 진행하여 전면의 먼 곳에 혈을 맺는다. 이곳은 맥로이론의 면배의 배(背)에 해당하고 17회절 명당에 상응하는 흉에 걸렸다.

최근에 박병엽은 팬택 C&I를 통해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팬택 C&I는 특수물류를 취급하는 발렉스 등 물류업을 하는 3개 계열사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박병엽의 사업능력을 발군으로 꼽아주지만, 풍객의 마음에는 2017년에 별세한 모친을 이곳에 합장으로 모신 것이 마음에 걸린다.

@ 명당에 합장으로 모시면 풍수파워가 상승작용을 하지만, 흉지일 경우에는 풍수적 불리함이 배가된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BTS의 방시혁. 그에 못지않게 우리나라 게임업계의 강자이며 부자순위 20위 이내로 진입한 방준혁. 두 사람은 남양방씨(南陽 房氏)의 같은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성장한 가정환경은 많이 달랐다. 방시혁은 부친이 고위관료를 지낸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반면 방준혁은 흙수저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방준혁은 가리봉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고, 초등학교 시절 학원을 다니기 위하여 신문배달도 하였다. 끝내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2학년 때 중퇴를 결심한다.

1998년, 중소기업을 다니며 모았던 자금으로 인터넷 영화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한다. 그 이듬해에는 위성 인터넷 사업으로 재도전을 했지만 기반시설을 구축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2000년에 자본금 1억원과 직원 8명으로 게임회사 넷마블을 설립했고, 2002년에는 유료화 과금방식의 한국 최초의 컴퓨터 게임인 캐치마인드(Catch Mind)를 선보였다. 2003년에는 상장기업인 플래너스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편입하고, 지분을 흡수한다. 2004년, 넷마블은 CJ그룹에 편입됐고, 방준혁은 이 댓가로 800억 원에 달하는 주식 부자가 되었고, 3년간 CJ인터넷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그의 선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그의 선영은 남원시에 위치해있다.

▲ 방준혁의 선조 납골당. 2004년 3월에 고조~조부까지 모셨다.
▲ 방준혁의 선조 납골당. 2004년 3월에 고조~조부까지 모셨다.

방준혁의 선조 납골당. 2004년 3월에 고조~조부까지 모셨다.

방준혁의 조년(早年)이 어려웠던 것은, 원래 조상님들을 모셨던 곳이 명당이 아니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 납골당으로 진입하는 맥로도.
▲ 납골당으로 진입하는 맥로도.

납골당으로 진입하는 맥로도.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재물을 상징하는 봉우리(富峯)는 보이지 않으니, 주변의 사격(砂格)이 혈처(穴處)의 풍수파워에 미치는 영향은 무관함을 보여줍니다.

멀리 조산(朝山)의 뒤에서 출발한 맥로가 마을을 통과하고 철로를 지나와서 납골당 하단으로 진입한다. 대기업 오너의 선영과 대등한 21회절의 풍수파워를 지닌 명당입니다.

납골당 뒤로는 철로가, 백호방으로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묘소 근처에 도로나 철로가 개설되면 혈(穴)이 파괴되어 후손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기존 풍수관념은 맞지 않는 대목입니다.

방준혁은 조상을 이곳으로 이장해 모신 후, 아래와 같이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2011년, CJ E&M 총괄상임고문으로 복귀.

2014년, CJ E&M이 CJ게임즈와 통합하면서 CJ넷마블의 최대 주주.

2014년, CJ넷마블의 이름을 넷마블게임즈로 바꾼 뒤, 연매출 1조 원 기업.

2017년, 매출 2조2900억 원으로 게임업계 매출 1위.

2018년, 주총에서 회사명을 넷마블로 개명.

2018년 4월, 방시혁의 빅히트엔터테인멘트에 2천 억을 투자하여 2대 주주. 2020년, 웅진코웨이의 지분 25%를 인수하여 코웨이 이사회 의장.

2021년 6월기준, 한국 부자순위 17위, 재산 2조 8,800억원.

@ 필자가 누차 강조했듯이 화장하여 납골로 모셔도 발복합니다.

@ 납골도 풍수파워가 어떤 곳에 모시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 배우자를 만나는 시점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듯이,

부모님(조상님)을 어떤 곳에 모시느냐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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