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최일남·김중혁 등 분석
근현대 작품 속 도시 서사 중심
전후 실향 의식·빈민 문제 포착
서울 중심 시스템 폭력성 경고
성장 이면의 위험 징후도 다뤄

▲ 1930년 지어진 서울 충정아파트(왼쪽)와 서울 도심. 서울이라는 같은 도시 공간 속에서 서로 상반된 모습을 이루고 있다.
▲ 1930년 지어진 서울 충정아파트(왼쪽)와 서울 도심. 서울이라는 같은 도시 공간 속에서 서로 상반된 모습을 이루고 있다.

2020년 한국의 도시화율은 85%를 넘어섰다. ‘자연인’이 아닌 이상 ‘도시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도시는 일자리를 매개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땅은 좁고 사람은 몰리니 문제가 발생한다. 팽창하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나는 동시에 폭력의 방식도 복잡해진다. 이 상처가 개인에게 깊게 파일수록 문학은 현실을 대변하고 미래를 품는다.

가령 손아람의 법정소설 ‘소수의견’에서는 서울 뉴타운 재개발 사업 현장에서 철거민의 아들과 진압 경찰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 사건의 인과 관계를 좇는 장면은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 법은 여전히 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1970년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촉발된 도시빈민을 둘러싼 저항의 문학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씁쓸하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가해자는 이를 방관한 국가일 것이다.

‘도시는 무엇을 꿈꾸는가’는 근현대 한국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도시적 삶의 양태와 서사를 들여다 본 인문서다.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도 활동중인 김정남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이 책을 쓰는데 10년간의 노고를 쏟아부었다. 소설 읽기로 고된 시간을 다져온 그의 연구는 도시의 이면을 예리하게 관찰해낸다.

저자는 한국의 도시변화를 시기별로 구분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 프로젝트(1912∼1945)를 시작으로, 전쟁의 폐허 위에 형성된 삶(1950년대), 개발독재 하의 강압적인 도시화(1960∼70년대), 아파트와 위성도시로 상징되는 도시적 삶과 공간적 위계(1970∼80년대), 세기말의 불안과 바닥이 없는 전락의 삶(1990년대), 도시재생·재개발을 둘러싼 국가 폭력과 기만의 삶(2000년대), 미래도시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새로운 모색(2010년대)을 진단한다.

“우리는 도시에 살거나 적어도 도시에 의지해 살아가며 수많은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가 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각 항목마다 최일남의 ‘서울의 초상’, 최인호의 ‘타인의 방’,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 등 도시소설로 우리 근현대사가 당면한 시대의 질곡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메밀 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은 향토적 서정성을 추구한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소설 속 배경은 경성과 평양은 물론 동경과 하얼빈,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확장되는 도시에 있다. 이효석은 서구 문화에 동경을 품고 있었고 근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도시 소설은 바, 카페, 유곽 등을 중심 공간으로 삼으며 동경과 상실을 이중적 층위로 그린다. 1928년 조선지광에 발표한 소설 ‘도시와 유령’에서는 이미 도시 빈곤과 슬럼화 등 경성이 안고 있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꼬집었다.

한국전쟁 이후 부터는 서울에 남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영원한 이방인’인 상경인들의 실향 의식도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최일남의 소설 ‘서울의 초상(1983)’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 1950년대 상경한 대학생 ‘성수’의 관점에서 당시 서울의 폭력을 고발한다. 성수의 눈에 비친 서울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공포나 초조함이 없다. 다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에 탐욕과 보상욕이 포개져 또 다른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촌티’를 벗어내야 했다. 김 교수는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는 식의 경로 의존이 지방을 서울의 내부 식민지로 만든 의식의 핵심”이라고 꼬집는다.

이에 비해 1990년대는 탈이념적 공간에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다. 투사도 영웅도 아닌 고독한 개인의 실존 의식이 이 시대 문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주택난과 청년실업도 대두됐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폐쇄적인 고시원에 살았던 2년 6개월의 시간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디지털 시대 관계의 감시망 또한 고민거리다. 연결이 강화될수록 무수한 가면을 쓴 위선도 늘어난다. 김 교수는 이처럼 도시에 비친 위험 징후를 포착하고, 도시 시스템이 문명의 괴물로 변해버리기 전에 생명과 공존의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중혁의 소설 ‘1F/B1 일층, 지하 일층’에 실린 문구가 이를 대변한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 이어지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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