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오대산 유격대 백골병단
1951년 창설 6·25 유격작전 참전
백두대간 적 후방 침투 첩보 수집

▲ 지난해 6월 제70주년 백골병단 추모행사에 참석한 백골병단 전우회 회원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3군단
▲ 지난해 6월 제70주년 백골병단 추모행사에 참석한 백골병단 전우회 회원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3군단

백골병단은 6·25전쟁 당시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후퇴해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백두대간 적 후방지역에 침투해 정보수집 활동을 펼친 육군본부에 의해 지난 1951년 1월 창설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이다.

백골병단의 정식 명칭은 ‘육군본부 직할 결사대’로 대구 육군보충대에서 전선으로 가기 위해 대기중이던 7000여명 중 800여명을 선발해 3주간의 특수교육후 적 후방으로 침투됐다. 지난 1951년 2월 기존 3개 연대를 통합하고‘백골이 되어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겠다’라는 각오와 함께 병력규모를 과장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백골병단(단장 채명신 중령)’으로 명명됐다. 최종적으로 647명의 백골병단 용사들이 생명을 건 유격작전에 참전했다.

1951년 2월부터 적 지역이었던 오대산과 설악산 일대에 침투한 백골병단은 3월말까지 험준한 산악지형과 혹한의 날씨, 그리고 보급이 두절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56일간 320여㎞를 이동하면서 적 후방지역에 대한 교란작전과 첩보 수집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때 획득한 주요 첩보로 적 사령부 주둔지에 공중폭격을 유도해 부대를 괴멸시키는 등 아군의 북진작전 계획 수립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됐다. 특히 남한내 빨치산 총사령관을 비롯해 적 고위 군관 포함 489명을 생포·사살했고, 총기 204점을 노획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3군단은 당시 임무 수행 중 산화한 고 윤창규 대위 등 호국영령 364명의 조국수호 의지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0년 11월 9일 참전전우회와 함께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백골병단 전적비를 건립하고 해마다 6월 추모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1961년부터 참전전우회를 결성해 60년간 백골병단 선양활동을 해 오고 있는 전인식(93) 회장은“나라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난 백골병단의 위국헌신 정신을 오늘에 되새겨 후배 전우들이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첨병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진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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