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전마마 특수활동비 이야기가 아니다. 혜경궁 김씨 법인카드 이야기도 아니다.

1795년 정조 을묘원행(乙卯園幸) 얘기다. 이 해는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이 한 해였다. 화성행차는 정조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을 찾아뵙고 어머니 회갑잔치를 신도시 화성에서 하기 위한 8일 간의 거둥길이었다. 하지만 그냥 환갑잔치 여행길이 아니었다. 재위 20년간 쌓아 올린 위업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신민들의 충성을 결집시켜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치 이벤트였다.

그 백서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다. 기록 문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정조와 혜경궁 홍씨를 수행한 1700여 명이 등장하는 반차도(班次圖)는 왕조의 위엄과 질서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단원 김홍도 화풍 특유의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운 얼굴들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의궤’에는 행차를 수행한 하급 관리의 이름과 임무도 세세히 기록돼 있다. 김득원은 온돌 점화, 박도성은 나인 세숫물 대령, 천규석은 연회 상차림 등등. 행사에 사용한 물품의 개수와 단가도 하나하나 남겼다. 공사에 동원된 공인의 이름과 주소, 복무일수, 업무, 품삯까지 기록돼 있다. 예산은 세금이 아니라 수익사업으로 마련한 10만3061냥8전 가운데 10만38냥6전8푼을 쓰고 나머지는 ‘의궤’를 만드는데 사용했다.

한 역사학자는 정조시대 기록에 대해 “무섭다”는 평가를 한다. 투명한 기록은 정당성과 자신감의 표현이다. 통치행위가 정당하지 못한 지도자일수록 기록을 멀리하고 기록자를 두려워한다.

결국 옷값과 특활비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 배우자로서 의류구입 목적으로 특활비 등 국가예산을 편성해 사용한 적이 없고 사비로 부담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에게 “믿어달라”는 주장이 구차하다. 오해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법원 판결대로 정보 공개가 정도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