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거리에서 한 시의원 예비후보자가 본인 이름을 적은 홍보판을 가슴팍 높이로 들고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연신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한동안 애처롭게 지켜봤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옷이 흠뻑 젖었지만, 후보자는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고생을 감내할 만큼 마음 자세가 돼 있으니 표를 달라는 일종의 극한 퍼포먼스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하루가 짧다. 그런데 정작 표를 줄 유권자들은 누가 나오는지 조차 모르니 이런 부조화가 또 있을까 싶다. SNS 등의 발달로 홍보 수단이 한층 고차원·다변화됐다고 하지만, 현장의 소통·홍보는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선거운동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계기로 탈바꿈했다. 사전선거운동과 함께 TV, 온라인이 선거운동의 중심마당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합동연설회가 폐지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합동연설회는 아날로그 선거 운동의 역사, 그 자체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연설회가 열리는 날은 축제날처럼 떠들썩했다. 박수 부대가 동원되고, 지지 후보의 연설이 끝난 뒤 썰물 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바람에 다음 후보자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텅 빈 운동장에 대고 연설을 하는 ‘웃픈’ 촌극도 연출됐다. 학연에 기대기 위해 연설 중에 모교 교가를 열창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듣기 민망한 흑색선전도 공공연하게 난무했다. 막걸리 한잔에 취기가 오른 유권자들 간에 몸 싸움이 벌어지는가 하면, 한동안 못 본 친구를 반갑게 만나는 곳도 합동연설회장 이었다.

이제는 박제된 필름사진 혹은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구시대 유산이 된 합동연설회는 돈 선거와 불법·탈법 선거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직접 민주주의의 백미였다. 감염병 창궐로 인해 행사가 사라지면서 신예 후보자나 TV토론이 없는 도·시의원의 경우 선거운동이 더 어려운 지금, 합동연설회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하염없이 인사를 하는 후보자의 ‘고행’을 지켜보는 유권자도 괴롭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dychoi@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