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누나 송화를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 모를 주막에서 그녀를 만난다. 동호는 북채를 잡고, 이미 눈이 멀어버린 송화에 소리를 청한다. 구슬픈 가락이 이어지더니 심봉사와 딸 심청이 만나는 장면에 이르며 소리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송화는 아비와 똑같은 솜씨로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러나 오직 가락과 장단으로 오누이의 정을 나눌 뿐, 서로 알은 채를 않는다. 아비 유봉이 송화의 소리에 한을 불어넣기 위해 눈을 멀게 했듯, 둘은 그 한을 다치지 않으려 기약 없는 헤어짐을 택한다. 서편제의 마지막 신은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임권택 감독이 고 이청준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메가폰을 잡은 ‘서편제’는 1993년 한국 최초로 공식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긴 영화다. 총관객 수는 추정 통계 290만명에 이른다. 이후 쉬리가 나올 때까지 6년 동안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영화는, 낡은 문화로 여겨졌던 판소리에 대한 편견을 깬 작품이었다. 전통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조명해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영화 팬들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 특히 영화를 통해 마지막 장면에서 소리를 한 명창 안숙선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게 했다.

요즘 한국의 전통문화는 K 한류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편제가 한국의 한을 알렸다면,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는 우리의 흥을 보여줬다. 판소리계 소설 토끼전인 수궁가를 재해석한 ‘범 내려온다’는 국악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내외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우리 문화가 새롭게 조명받는 가운데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선 사북초에 다니는 신정인(6년) 학생이 최근 통일기원 제8회 세종전국국악경연대회 초등부 판소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 한국 국악계에 새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학생은 내로라하는 전국 대회를 휩쓰는 국악 신동이라고 하니,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2년 전부터 서울에 오가며 안숙선 명창께 흥보가를 배우고 있어 더욱더 뜻깊다. 아리랑의 메카인 정선에서 명창이 탄생하기를 기다려본다.

이수영 논설위원 sooyou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