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깡통시장 골목에 있는 오래된 국숫집은 김치 국수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런데 이 집 메뉴 중 비빔국수는 매운맛으로 더 유명하다. 여행을 온 외지인들이 호기롭게 주문하지만, 울면서 후회하기에 십상이다. 심한 경우 병원신세를 져야 할 만큼 강도가 세다. 탈이 날 수 있으니 먹지 말라는 주인 할머니의 만류에도 도전의 행렬은 끊이질 않는다.

매운맛 마니아들은 전국을 누비며 ‘도장 깨기’에 나서기도 한다. 강원도에선 원주 응급실떡볶이와 강릉 형제장칼국수, 춘천 이순례 손만두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경기도는 송추불냉면, 남문매운오뎅이 빨간 맛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서울 매운 족발, 충남 낙지볶음, 충북 닭발, 전남 불닭발, 전북 매운 잡채, 경남 핵짬봉, 경북 등갈비찜, 제주 통 아귀찜 등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파워를 과시한다.

매운맛은, 맛의 종류에도 포함되지 않는 일종의 통증이라고 한다.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고통을 완화하려고 엔도르핀을 분비해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주 섭취하게 되고, 몇몇 애주가들은 해장용으로도 먹는다.

얼마 전 춘천 매운맛을 대표하는 ‘사천짜장’ 창시자 이장륭 할아버지가 91세로 세상을 떠나 단골손님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화교 출신인 그는 1956년부터 춘천 요선동에 둥지를 틀고 동순관이라는 중화요리 집을 운영하다 1970년부터 대화관으로 간판을 바꿔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식당의 인기 메뉴는 ‘사천짜장’으로 불리는 매운 짜장이다. 관공서와 금융기관 등 주변에 직장이 많아 고객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 음식을 찾고 있다. 쫀득한 면발이 매운 소스와 만나 감칠맛을 뽑아낸다. 중독성이 있어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단골이 적지 않다. 외지까지 소문이 나면서 대화관은 매운맛 성지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장님은 떠났지만, 사천짜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막내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고, 첫째 아들의 음식점 대화관은 춘천 명동에서 성업 중이다. 할아버지가 남긴 맛의 유산은,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이수영 논설위원 sooyou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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