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국제평화영화제 28일까지
청춘·전쟁·인권 등 주제 88편
국내외 영화인 관객 대화 다채
거점 공간 어울마당 신축 눈길
도정 교체 따른 변화 여부 관심

올해 4회째를 맞은 2022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상영작 88편은 생각이 달라도 화해할 줄 아는 법, 포용의 폭을 넓히는 비결을 알려준다. 반대로 불의에 저항하는 힘, 불편한 갈등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도 그린다. 다양한 대화와 음악이 함께한 올해 영화제에는 해외 영화인들도 오랜만에 찾았다. 불안한 청춘과 성장담을 묘사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아동청소년과 여성 인권, 디아스포라, 동물권 등이 다양하게 다뤄졌다. 전쟁과 핵, 테러, 정치범, 민주화 운동 등 무거운 주제의 작품들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영화인들의 꿈을 즐겁게 얘기하는‘영화축제’이기도 했다. 28일까지 열리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GV 및 상영현장 곳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옮긴다.

■ 아날로그 감성 속 소녀의 꿈

“저 정말 이 질문을 기다렸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4세 배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편 데뷔작 ‘비밀의언덕’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지은감독, 초등학생 당시 영화를 찍은 후 중학생으로 훌쩍 성장한 문승아 배우가 함께 평창에 왔다. ‘비밀의 언덕’은 90년대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거짓말과 글짓기로 멋진 나를 만들어 가는 ‘명은’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의도와 촬영 뒷이야기 등을 나눴다. 이 감독은 “솔직해졌으니 성장했다는 식의 단순한 도식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선악의 이분법을 떠나 작은 아이에게 인간의 깊이를 보시기를 바랐다”며 “과연 난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10대 배우의 꿈을 엿보는 즐거운 자리이기도 했다. 문 배우는 “캐릭터가 저와 거의 닮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희망 역할에 대한 답은 마지막에 나왔다. “액션을 꼭 하고 싶어요. 어른이 되기 전에 ‘어벤져스’의 새 캐릭터 같은 인물이요. 교복 입고요!”

■ 한국 현대사 다룬 평양시네마

영화제만의 독특한 섹션인 ‘평양시네마’에 올해 북한 영화는 없었다. 대신 분단 상황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아픈 현실을 마주보게 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북한이탈주민과 DMZ,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경계를 말하는 임노아 작가의 작품도 그 중 하나다. ‘내가 건너야 할 강 Ⅰ·Ⅱ’와 ‘전망대 너머’ 등 3개 작품이 6·25 72주년을 맞은 25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 상영됐다. 사진과 순수미술, 미디어를 전공한 임 작가는 영화감독은 아니지만 분할 화면 등을 활용해 강과 다리, 나무가 우거진 수풀, 광화문 시위 현장의 바리케이드 까지 다양한 경계의 이미지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철원 고석정과 노동당사 풍경을 지나 2020년 서울 광화문 앞 시위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 장면은 욕심과 이념이 가른 채 방치된 상처가 과연 DMZ에만 있는지, 우리 일상과 내면마저 찢어버린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승민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된 큐레이팅 토크에서 임 작가는 “영화관 상영은 생각지 못했었는데 탈북도우미 활동을 하며 관심 가져온 주제를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 윤성호 감독 작품세계 집중조명

영화인을 집중조명하는 클로즈업 섹션의 주인공, 윤성호 감독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1개 작품도 상영중이다. 영화 ‘두근두근 배창호’는 배창호 감독이 감초로 등장, 연애 조언을 해 웃음을 자아냈고, ‘우익청년 윤성호’에서는 이념중심으로 갈라진 사회를 풍자하는 등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다.24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윤 감독은 “초기작들은 쑥스럽지만 선보이게 됐다.최근에는 연애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작업중”이라고 소개했다.

■ 홍콩 등 국제정세 담은 작품 관심

관객 대화 등 이벤트가 없는 상영관 분위기도 밀도는 높았다. 제니퍼 응고의 다큐 ‘페이스리스(faceless)’가 상영된 감자창고 시네마에는 연신 눈물 훔치는 관객들이 많았다. “당신들도 언젠간 누군가의 아빠가 될 거야, 그렇지?시민들이 아파하고 있어. 그만 좀 해” 시위대에 무차별적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들을 향해 한 여성이 울부짖는다.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촉발된 홍콩 민주화 운동을 다뤘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항해 신분을 숨긴 ‘얼굴없는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이름 대신 ‘학생’,‘예술가’, 누군가의 ‘부모’,‘딸’로 시민 모두 참여함을 시사한다. 2019∼2020년을 담았지만 홍콩의 현재이기도 하다. ‘학생’으로 등장한 인물은 여전히 홍콩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희망이 있어 버티는 게 아니라,버티니까 희망이 있는 거예요”

■ 하드웨어 확충 속 향후 향방 관심

올해 영화제는 도정 교체를 앞둔 시점에 치러지면서 영화제 향방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열렸다. 문성근 이사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4년간 맡아 온 직을 내려놓고 후방 지원하겠다는 의견을 내부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후임 임명 등 일부 변화는 예고돼 있다. 이에 대해 영화제는 “축제 자체로 봐주시기를 바란다”면서 분위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성과로는 횡계리에 신축한 거점공간‘을 꼽는다. 영화제 상징색 등을 활용한 표지판 등도 새로 세워졌다. 지역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상가가 참여한 로컬파트너, 걷기와 캠핑 등 야외활동 확장, 조명섭·김다현 등 주민 선호 뮤지션 초청도 이뤄졌다.

주민 반응은 다양하다. 발전적 지속을 희망하는 가운데 주민 참여와 접근성, 대중성 확보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박정우 횡계9리 이장은 “지역문화예술행사는 정치적으로 흐르기 보다 행사 자체로 판단하고 지원해야 한다. 답사를 통한 면밀한 분석도 필요하다”며 “이념에 따라 부침을 겪으면 결과는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숙박업을 하는 박모 씨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더 입증할 필요가 있다. 행사가 잘 정착하려면 주민참여가 기본돼야 한다”고 했다. 김여진·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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