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석(텅스텐)은 금속 중에서 녹는 점이 가장 높은 3410℃다.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강철에 섞어 텅스텐강을 만들 때 이용하고, 전기 에너지를 빛이나 열에너지로 바꾸는 힘이 커 진공관이나 전구의 필라멘트로 쓰인다. 광복 이후 이렇다 할 수출품이 없던 시절, 중석은 오징어와 함께 미국과 일본에 팔았던 대표적인 수출품이었다. 그 한 가운데에 영월 상동의 대한중석이 있었다. 1960년대 대한중석은 우리나라 유일의 외화벌이 국영기업이었으며, 회사 수출액이 나라 전체의 60%를 차지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4월 상동광산이 발견되면서 1937년 고바야시 광업회사에서 채광을 시작했다. 1945년 8월 그 경영권이 우리나라로 넘어온 뒤 1952년 9월 국영 대한중석에 인수되면서 국내 텅스텐 생산량의 80%를 생산하며 국가 경제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대한중석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1952년에는 전체 수출액의 56%인 1645만여달러 수출에 이어 1959년 화학 처리공장 준공, 1961년 뉴욕과 런던지사 설립, 1963년 도쿄지사 설립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실업 축구 선수단을 운영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했던 대한중석 상동광산은, 중국산 중석과의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1992년 6월 채굴이 중단됐고, 1994년 2월 폐광하면서 막을 내렸다.

당시 대한중석은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했지만 영월 지역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1년 상동읍의 인구는 2만2600여명을 기록했으나 지금은 1000명 안팎에 불과한 폐광촌으로 남아 있다.

그런 상동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알몬티대한중석이 텅스텐 광산 재개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만간 광석 등분을 가리는 선광장(選鑛場) 건설을 위해 포르투갈로 텅스텐 원석을 보내는 등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고 있다. 회사는 선광장 건설과 갱도 굴진 및 시험 가동 등을 추진해 매년 2500t 이상의 텅스텐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월 상동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될지 주목된다. 먼지 쌓인 역사책 속에 있을 것 같았던 대한중석이 다시 생기를 찾아 반짝이고 있다니, 묘한 설렘을 감출 수 없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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