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에 잘려나간 상처만 남아
자연경관 빼어난 자병·석병산
생김새 비슷해 ‘애인·남매’ 불려
1970년대 석회석 광산 개발 시작
45년간 자병산 100m 깎이고 훼손
백두대간 산줄기 자병산서 끊겨
강릉∼정선 걸쳐있는 석병산
북쪽 두리봉·남쪽 백봉령 연결
정상 오르면 기암괴석 물결 장관

석병산 정상에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제공=동부산림청 
석병산 정상에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제공=동부산림청 

아! 백두대간


태백산맥의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한 해발 1055m의 ‘석병산’, 백두대간 마루금인 해발 872.5m의 ‘자병산’. 석회암지대인 석병산과 자병산은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뽐내고 있다. 회색빛 돌, 자줏빛 돌로 병풍을 둘렀다고 해 각각 석병산, 자병산으로 명명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잇는 산줄기의 중심인 백두대간이 자병산에서 끊겼다. 석회석 채광으로 처참히 무너지고 훼손됐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수려한 산줄기였던 자병산의 헐벗은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고통과 눈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결코 지울 수 없는 백두대간 역사의 크나큰 오점이다.

석회석 채광으로 처참히 무너지고 훼손된 자병산 모습. 저멀리 자병산은 푸른색이 사라지고 회색과 갈색으로 뒤덮여 있다.
석회석 채광으로 처참히 무너지고 훼손된 자병산 모습. 저멀리 자병산은 푸른색이 사라지고 회색과 갈색으로 뒤덮여 있다.

■ 백두대간의 아픈 손가락 ‘자병산’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2번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한번은 진부령에서 더이상 북으로 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에, 다른 한번은 석회석 채광으로 속살이 갈기갈기 찢긴 자병산을 마주하면서이다. 산을 오르는 모든 이들은 백두대간의 한축인 자병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고 만다.

경관이 수려해 ‘산계8경’에 속했다. 예부터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닭 등 제물을 싸들고 기우제를 지내는 신령스러운 산이었다. 제를 올리고 나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고 한다.

“자병산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집에서 가깝고 첩첩산골에서 할 수 있는게 없다보니 산나물과 꽃을 따러 가고 산책도 하는 유일한 놀이터였죠. 농사가 생계수단이다 보니 가뭄이 가장 무서웠어요. 어른들이 생닭을 잡아서 피를 뿌려 더럽혀 놓으면 그걸 씻기 위해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닭을 갖고가 그 자리에서 죽여 그 피를 산봉우리 등에 뿌리는 기우제를 지냈어요. 산신을 믿은거죠. 제를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오는 길에 곧바로 비가 내렸다고 해요. 마을에 재난이 닥쳤을 때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죠. 떡하니 우뚝 서 있어 큰 바람도 불지 않아 농사도 잘됐어요. 마을과 주민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죠.”

자병산 인접 마을인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 토박이인 유병용(71) 이장은 자병산에 대해 이같이 회상했다.

자병산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산림·생태자원의 보고다. 석병산은 뭉뚝하고, 자병산은 뾰족하다. 그래서 석병산을 여자산(암산), 자병산을 남자산(수산)이라고 했다. 생김새와 이름이 비슷해 예부터 ‘짝꿍산’이라고 불렸다.

산계3리 주민 윤태혁(75) 씨는 “옛날에는 이쁘장하게 생기고 아름다운 산을 ‘수산’, 늠름하고 멋진 산을 ‘암산’이라고 했어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의 기준이 정반대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애인, 남매’라고 했어요. 옛 어른들은 석병산 보다는 자병산을 더 치켜세웠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자병산은 그 옛날의 자병산이 아니다. 아프다. ‘눈물의 산’이 됐다. 신음 소리를 내며 매일 발버둥치고 있다. 40년이 훌쩍 넘었다. 눈물의 시작은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시멘트는 아파트 등을 지을 때 재료로 쓰는 시멘트 제조를 위해 석회석 광산 개발지로 자병산을 택했다. 70년대 중반 개발허가를 받은 뒤 산 정상부와 사면, 봉우리할 것 없이 모두 잘라냈다.

해발 872.5m에 달하던 자병산은 현재 776m로 45년동안 무려 100m 가량 깎여나갔다.

삽당령에서 4.4㎞ 떨어진 두리봉 정상
삽당령에서 4.4㎞ 떨어진 두리봉 정상

당시에는 자병산에서 이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백두대간’이라는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한 ‘산경표’가 발견되고, 이후 백두대간 걷기와 종주붐이 일면서 처참한 모습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지금도 자병산은 살이 찢기고 베이는 고통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유병용 이장은 “자병산이 끊어지면서 기후가 변하는 등 풍수해, 재난,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해요. 여기서 광산 붕괴사고도 일어났죠. 석병산에서는 대형산불이 잇따라 발생했고요. 산을 계속 깎다보니 바람이 무척 세지고 가을이 끝나자 마자 서리가 들어요. 옥계 시내쪽으로 가면 바람이 덜 부는데 산계와 남양쪽으로는 바람이 엄청나요. 겨울에는 굉장히 춥죠. 산이 바람을 막아줬는데, 계속 깎이면서 안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요. 자병산의 예전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더이상 아프게 하지는 말아야죠. 최대한 복구가 이뤄져야 합니다”라말했다.

 

석병산 정상에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제공=동부산림청 
석병산 정상에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지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제공=동부산림청 

■ 자병산의 오랜 벗 ‘석병산’

아주 아주 옛날 자연에 의해 비슷한 생김새로 만들어져 지금껏 동고동락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자병산이 석회석 채광으로 40년 넘게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단짝인 석병산은 해줄게 없다. 그저 바라보며 ‘많이 아파, 괜찮아’라고 묻는게 전부다. 자병산을 아프게 하는 이들에게 목놓아 ‘이제 그만하라’고 외치지만 듣지를 않는다.

석병산은 늠름하고 웅장하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에 걸쳐 있다.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끼고 남하해 오대산과 황병산을 일구고 청옥산·두타산으로 뻗어 내려가기 직전의 능선에 자리잡았다. 북쪽으로 가면 두리봉, 남쪽으로 가면 자병산과 백봉령이다.

주민 최태희(64) 씨는 “백두대간은 백봉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향해야 하는데, 석회석 광산 개발로 자병산이 크게 훼손돼 생계령을 거쳐 석병산으로 가야한다”며 “백두대간이 끊긴 것에 마을 주민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자병산의 끔찍한 현장을 바라보는 석병산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석병산 정상 바로 아래 바위에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 모습.
석병산 정상 바로 아래 바위에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 모습.

일반적인 백두대간 종주 코스는 삽당령∼두리봉∼석병산∼고병이재∼생계령∼백봉령이다. 삽당령∼두리봉∼석병산, 석병산∼두리봉∼삽당령 코스(왕복 12㎞, 소요시간 약 4시간)는 울창한 숲길로 이어져있다.

전체적인 등산로가 나무와 숲으로 우거져 석병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거의 조망이 없다.

삽당령∼두리봉(4.4㎞)구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두리봉 정상은 해발 1033m이다.

두리봉에서 800m 가량 급경사 구간을 오르면 석병산 정상이다.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산 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장관이다. 정상에 서면 고루포기산, 선자령 등 산줄기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다.

석병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바위에 둥근 구멍이 뚫린 일월문을 만날 수 있다. 석병산과 자병산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백두대간 가치에 있어서도 가히 으뜸이다. 훗날 백두대간의 눈물로 기억될지언정 복구가 돼 옛 모습을 되찾았다는 희망의 역사로 남아야 할 것이다.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게 당연한 ‘해피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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