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불조심 표어를 꼽으라면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일 것이다. 이 표어는 76년 전인 1946년부터 사용해 왔으니까, 우리와 익숙할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 불조심 표어를 내라는 숙제를 받아든 적도 많았다. 정부는 매년 새로운 표어를 내걸고 불조심을 강조했다. 그중 ‘작은 성냥불이 온 집을 태운다’는 것이 있었다. 작은 성냥불이 큰불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성냥은 1827년 영국의 J.워커가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모니를 발화 연소제로 쓴 마찰 성냥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발화 연소제로 백린을 사용한 성냥이 프랑스 등에서 제조돼 실용화됐으며, 1848년 독일 R.베트거가 별도의 마찰면을 분리한 안전성냥을 발명,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화기인 1880년 승려 이동인에 의해 일본으로부터 처음 들어왔다. 성냥 사용이 늘면서 1970년대에는 생산 공장이 300여 개에 달했다고 한다.

성냥은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조리하거나, 난방을 위한 불을 지필 때 성냥이 함께 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등잔불을 밝히기 위해서도 성냥은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성냥불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 어릴 적 한 번쯤 성냥으로 불장난을 하다가 성냥통에 불이 옮겨붙어 무척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성냥불로 인해 큰불이 일어난 일도 잦았다.

세월이 흘러 성냥은 가스라이터로 대체되면서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우연히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본 필자로서는 그 광경이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만큼 요즘은 성냥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성냥은 추억의 물건이 됐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어디 성냥뿐이겠는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겼던 숱한 존재들이 어느새 사라진 것을 우린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뿐이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 역시 남아있을 수 없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