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강원지역에 1억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9개월만에 갈린 강원지사가 있다. 당시는 군사정권으로 경찰 총수인 내무부 치안국장을 시도지사로 발령하던 때여서, 그때 강원지사로 온 이가 정석모였다. 부친이 1월부터 10월까지 재직하는 동안 춘천중학교에 다닌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 입돋움에 올랐다. 강원도 연고 인사로 분류돼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발언 배경을 살피는 과정에서 계룡산이 있는 공주 계룡면에서 일제강점기에 면장을 지낸 할아버지 정인각의 일본 총독 표창 이력이 나와 실제 기사를 검증했다. 총독부 발행 기관지 매일신보 1939년 2월 11일자 2면에 실렸다. 2월 11일은 일본 최대 경축일인 ‘기원 가절’로 신문 1면은 도쿄에서 일본왕이 신전에서 의례를 지낸 내용을 한국인에게 알렸다. 2면엔 일본인 총독이 포상한 명단이 실렸는데 ‘지방행정’분야에 정 면장이 등장한다. 정 면장 표창 기사 옆에는 ‘인고 단련과 황도 정신을 기조로 하여 일본 정신을 발양함으로써 흥아의 장기 건설에 매진’하고자 국민정신 총동원령을 알리고 있어 일제말기 수탈정책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정 면장은 1920년대 일본 오카야마현에 석달동안 갔다온 뒤 계룡면장이 됐으며, 1933년엔 계룡면 월암리에서 하루에 주민 50명을 불러 상투를 자르게 하고 삭발시킨 것으로 나온다. 1940년에는 ‘일본 황기 2600년’ 축하 신년광고를 내는 등 총독부 지시에 부응한 신문기사는 20여건 더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면장 역할은 일본 총독-도지사-군수-읍면장으로 이어지는 식민행정 구현의 일선 지휘자이다. 면장 회의에서 한번에 수십건씩 총독 지시건이 하달됐을 뿐 아니라 전국 각지 모두 동일하게 일사분란했다. 일본 쌀 수출량을 55%로 늘리면서 굶주린 소작농이 화전민으로, 만주와 러시아로 흩어진 결과를 초래했는데도 ‘농촌진흥정책’으로 겉포장했다.

주권 회복을 위해 아버지, 어머니, 누이와 형이 목숨을 잃고 옥고를 치른 후손이 공존하고 있음을 의식했다면 정 위원장 발언은 나올 수 없다. 더구나 근대 외세 열강을 대하는 정 위원장의 태도 문제점 지적에 대해 ‘역사공부 더하라’라며 가르치려 들다니! 강단보다 더 센 역사지식을 보유한 시민이 많고, 역사책이 잘 팔리는 한국 민의를 가소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

박미현 논설실장 mihyunp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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