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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붕어빵처럼 닮아있는 반성의 글, 하나의 ‘장르’가 되다 사회적 물의 일으킨 공인 자필사과문에 대중 씁쓸 ‘반성문 매뉴얼’따라 쓴 글에 미안한 표정·감정 안느껴져 활동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 사과문 대행업체 사회 만연

[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반성문의 표정

2020. 07. 04 by 김여진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야구선수가 자필사과문을 올렸다.내용을 보니, 음주운전을 반성하는 글이었다.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다,상처와 실망을 안겨드려 마음이 무겁다,잘못을 뼈저리게 되새기며 자숙하겠다는 내용이었다.흰 종이에 자필로 써서 올린 글이었다.앞뒤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어떤 사람은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며칠 뒤, 한 가수가 자필사과문을 올렸다.내용을 보니, 또 음주운전을 반성하는 글이었다.부끄럽고 죄송하다,진심으로 죄송하다, 머리 숙여 깊게 반성한다는 내용이었다.이번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어떤 사람은 또 화를 냈다.

오랫동안 반성문을 봐왔다.자필사과문,자필반성문은 잊을 만하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루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공교롭게도 가까운 시기에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동선수와 가수의 반성문의 내용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 반성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코로나19가 변곡점을 맞이하던 지난 5월,이태원클럽 방문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두 가수의 자필사과문이 생각났다.유사한 문제로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일까,이들의 반성문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저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똑같지만, 두 사람의 반성문 일부다.

앞뒤만 똑같은 게 아니었다.중간의 내용도 너무 똑같아서, 읽으면서도 헛웃음이 났다.궁서체를 닮은 자필사과문을 올렸는데도 대중들이 시큰둥해 하거나, ‘또?’ 라며, 식상해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다.

자필로 자신의 중대사를 올리거나, 자필로 구구절절이 사과문을 올렸을 때, 대중들이 따뜻하게 질책하며 호응해주던 때가 있었다.생각해보면 그때의 자필사과문은 오롯하게 한 개인의 이야기가 있는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했다.거칠고 투박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 반성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그럴 때, 대중들은 죄가 미운거지 사람이 미운 건 아니라며, 한번쯤은 눈감아주곤 했다.

그런데 요즘의 반성문은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반성문의 매뉴얼’이라고 할 만한 순서를 따라 매끄럽게 작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그들은, 나는 누구고,어떤 잘못을 저질렀으며,누군가에게 얼마나 피해를 입혔고,그래서 어느 정도의 깊이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중립적인 단어를 동원하여 작성한다.아마도 소속사 법무팀의 조언을 받아 작성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분명히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성된 자필사과문은 복붙(Ctrl+C - Ctrl+V)의 아날로그 버전이었다.그래서일까,반성문에는 ‘죄송하다’는 말이 문단마다 도배되어 있는데도, 미안한 표정과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반성한다는 것, 뉘우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요즘 반성문이라는 ‘장르’의 글은 앞으로 그들이 큰 제약 없이 활동을 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사회적 비난과 형량을 낮추기 위한 ‘불편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과문을 검색하다 보니, 사과문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다.‘반성문’ 작성 관련 카페에 수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는 얘기가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제법 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업체에서는 법원,검찰청,경찰서에 제출하는 반성문을 기관의 성격에 맞추어 작성해준다고 광고했다.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가 음주운전,성추행 등 목적에 맞게 작성해준다고도 덧붙였다.업체에서는 문구만 작성해주는 게 아니었다.심지어 ‘자필’반성문도 대행해 준다고 광고했다.자필대행은 파일로 작성하는 반성문 작성의 두 배 가격이었다.반성문은 형 감량의 최후의 보루이고,반성문을 제출해야만 형량도 낮아지니,반성문을 통해 “형 감량의 효과를 누리라”는 광고문도 빼놓지 않았다.

얼마 전, 온라인 그루밍으로 여중생을 성착취 했던 10대 소년은 무려 210통의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한다.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주빈 역시 날마다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한다.그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괜히 궁금해졌다.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옥 끝까지 내려가게 했던 그들이 형 감량을 위해 이토록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해서 또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자필반성문을 써서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싸늘한 대중들의 반응을 살피면서,그들이 억울해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거짓말을 버젓이 하고서도,말도 안 되는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죄송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송구하다’는 한 마디로 퉁치려고 하는, 때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끝내 입을 닫아버리는 골드 뱃지를 단 사람들도 있는데,하면서 말이다.그 생각을 하니 또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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