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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시인 생가터에 위치한 문학관 마리서사·유명옥·봉선화다방 재현 해방전후 종로·명동거리도 볼거리

‘시’를 살다 떠난 박인환, 고향 품 영원한 청춘으로 남다

2020. 09. 17 by 진교원
▲ 박인환문학관의 상징인 박인환 동상.시인의 품에 앉으면 ‘목마와 숙녀’ 시가 낭송된다.
▲ 박인환문학관의 상징인 박인환 동상.시인의 품에 앉으면 ‘목마와 숙녀’ 시가 낭송된다.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중략>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중략>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선집/산호장/1955

 

▲ 박인환문학관이 재현한 박인환 시인이 묵던 곳
▲ 박인환문학관이 재현한 박인환 시인이 묵던 곳

목마 타고 떠난 시인.웬만한 남녀노소라면 다 아는 시 ‘목마와 숙녀’.해방전후의 격동기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동하던 중 31세에 요절한 박인환(1926~1956).지금은 인제읍 소재의 박인환 문학관에서 그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가 살아 쉼 쉬는 휴식처로서,외지 관광객들에게는 풍요로운 문화자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박인환문학관에서는 1940년대 서울의 거리,그 시대 모더니즘 시인들이 드나들던 봉선화다방과 동방싸롱 등의 시장거리와 잠시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박인환 문학관 앞마당에서는 잘 생긴 박인환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옛 사진속 젊은 시절 모습과 비슷하다.눈과 입술,코 등의 선이 굵은 잘 생긴 미남형이다.코트를 입은 그는 바람에 넥타이가 왼쪽 어깨와 귀 사이로 휘날리며 만년필을 꼭 쥐고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마치 금방 목마를 타고 다시 살아나 시를 쓸 것처럼 생동감 넘친다.이 작품의 제목은 ‘시인의 품’.지난 2011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원경 작가가 만들었다.제목처럼 시인의 품에 직접 안길 수 있다.그 품에 안기면 시인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가 낭송된다.하늘을 바라보며 시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마음이 짠해진다.

 

▲ 박인환이 종로 낙원동에 만든 마리서사 서점 .당대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 박인환이 종로 낙원동에 만든 마리서사 서점 .당대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박인환 시인의 생가터인 인제읍 상동리 415의 1번지에 만들어진 박인환 문학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 건축면적 640㎡ 규모로 조성됐다.주요공간으로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분된다.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박인환이 활동했던 해방전후의 종로와 명동거리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나오는 마리서사는 박인환이 스무 살 무렵 종로 낙원동에 세운 서점.마리서사는 프랑스 출신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 책방을 뜻하는 서사(書舍)를 합친 것으로 당시에 구하기 힘든 외국 문인작품과 문예지,화첩 등이 잘 갖춰져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난 발상지였다.

마리서사 옆에는 선술집 유명옥이 있다.김수영 시인의 모친이 충무로에 낸 빈대떡집이다.여기서 김수영,박인환,김경린,김병욱 등이 모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과 후기 모더니즘을 주도하면서 동인지 신시론 제1집을 냈다.유명옥 맞은편의 봉선화 다방도 빼놓을 수 없다.8·15광복과 함께 명동에서 가장 먼저 개업했다.모나리자 다방,동방싸롱,포엠 등 박인환이 꿈을 키웠던 역사적 명소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 박인환 시인의 과거 사진과 기록물
▲ 박인환 시인의 과거 사진과 기록물

2층 전시실은 인제의 과거를 볼 수 있는 흑백 사진으로 꾸몄다.박인환의 고향인 상동리의 모습도 보인다.설악산에 눈이 쌓이고 사람들은 가난하지만,옛 인제 사람들의 생활이 정겹게 느껴진다.박인환문학관 뒤편으로는 산촌민속박물관을 거쳐 인제사랑병원앞까지 300m쯤 시인 박인환의 거리가 이어진다.시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공공미술작품들로 꾸며졌고,거리 끝에는 상징적인 조형물이 서 있다.그곳에는 목마와 숙녀와 술주전자를 앞에 둔 박인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중략>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중략>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세월이 가면’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첫사랑 여인과의 애절한 추억을 써 내린 정한의 시다.박인환은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남겼다.1956년 3월20일 밤 9시 자택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그렇게 먼저 간 연인 곁으로 떠났다.동료 문인들은 미망인의 양해를 얻어 박인환을 망우리 공동묘지 옛 연인의 묘옆에 나란히 묻었다.그가 좋아하던 조니워커와 카멜 담배도 함께.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박인환 문학관에서 시와 노래로 그를 다시 만나고 있다.

진교원 kwchin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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