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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고성 청간정·만경대 빼어난 경치에 풍류·유람 거점 유명 안축·정추 등 여말선초 한시절창 다수 한국전쟁 후 군사시설 묶여 출입 불가 동쪽 백사장·바다·봉죽도 장관 서쪽 백두대간·설악산 줄기 조망 본래 청간역 정자, 수차례 중수 진행

송강이 노래한 파도와 바람 수백년 거슬러 오늘에 닿다

2020. 11. 05 by 이동명
▲ 겸재 정선 작 ‘청간정도’
▲ 겸재 정선 작 ‘청간정도’

[강원도민일보 이동명 기자]
‘丹書(단셔)난 宛然(완연)하되 四仙(사션)은 어되가니,예 사흘 머믄 後(후)의 어되가 쏘 머믈고.仙遊潭(션유담) 영郞湖(영낭호) 거긔나 가 잇난가.淸澗亭(쳥간뎡) 萬景臺(만경되) 몃 고되 안돗던고.’(삼일포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의 무리 남석으로 가다’라고 쓴 붉은 글씨가 뚜렷이 남아 있는데,네 신선(영랑,남랑,술랑,안상)은 어디에 갔는가.여기서 사흘 머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던고.선유담,영랑호 거기나 가 있는가.청간정,만경대와 같은 곳 몇 군데서 앉아 놀았던가.) 정철의 관동별곡 일부다.가사에서 보듯 청간정이 만경대와 어우러지면 송강 정철이 노래했던 일품 경관이 완성된다.

▲ 청간정 모습
▲ 청간정 모습

# 관동팔경 수일경 청간정

바람이 소슬 부는 날 간성 청간정에 오르면 해변으로 달려오는 파도소리와 댓잎이 바람따라 부딛히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파도를 가만히 보면 하늘에 흰구름이 일순간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하다.청간정은 속초에서 간성 방면으로 국도 7호선을 따라 10여분 이동해 오른쪽 바다에 닿을 듯한 야트막한 언덕에서 만날 수 있다.

누정 동쪽 눈 앞에 펼쳐지는 하얀 백사장과 너른 바위에 앉은 갈매기 떼,푸른 바다 색에 멀리 봉죽도가 조화를 이뤄 장관이다.일출의 역동성과 석양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서쪽으로는 멀리 백두대간과 설악산 장엄한 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남쪽으로 청간천과 천진천이 흐르고 넓다란 농경지가 평화롭다.그 너머 자연이 디자인한 해안선과 해수욕장,인간이 빚은 어촌,아파트가 역동적으로 어울린다.누정 북쪽 지척에는 군부대 시설 내 만경대가 있고 청간리를 지나 아야진리 어촌,항구,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창건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본래 청간역의 정자였다.이후 만경대 남쪽 물가 봉우리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1560년,1662년,1844년,1863년 등 중수가 이뤄졌다.정철의 손자인 정양이 간성군수로 재직하던 1662년 만경대 지척에 만경루를 지으면서 청간정과 함께 모았고 누와 정이 화려해졌다.그 후 비바람과 화재로 돌기둥 10여개만 남아있던 것을 1928년 봄 토성면장 김용집의 발기로 현재 위치에 옮겨 중수됐으나 6·25때 전화를 입었다.1953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지시로 보수됐고 1980년 최규하 제10대 대통령이 청간정 보수정화사업을 지시함에 따라 1981년 4월22일 해체·보수됐다.정면 3칸,측면 2칸 겹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초석은 앞·뒤에 높이 2.1m의 8개와 가운데 높이 1.2m의 4개로 구성돼 있다.2012년에도 누정 보수와 주변 환경정비가 이뤄졌다.

청간정은 남아있던 돌기둥을 활용해 현재 위치로 옮겨 새로 지으면서 명칭은 정(亭)임에도 루(樓)형태를 보이고 있어 정체성이 모호하다.청간정 현판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작품이다.

▲ 만경대 전경
▲ 만경대 전경

#일만 경치를 조망하는 만경대

간성 만경대 꼭대기는 50여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만경(萬景)’은 온갖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은 곳에서 망망대해와 함께 설악산,금강산 줄기를 잘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천후산(신선봉 또는 울산바위)과 설악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의 화룡점정이다.층층 쌓아올린 듯한 약 9m 높이의 돌산이다.굽고 휜 소나무들이 자라는데 돌계단 위의 뱀 같다고 해서 사송(蛇松)이라 불리기도 했다.만경대는 청간정 북쪽 200m 지점인 군부대 시설내 청간리 54-11번지에 위치해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하다.

청간역참 근처에 있던 만경대는 빼어난 경치와 좋은 관망으로 풍류·유람 거점이 됨과 동시에 문인들의 문학적 산실이 됐다.안축(安軸),이곡(李穀),이달충(李達衷),정추(鄭樞) 등이 여말선초에 쏟아낸 한시 절창이 많다.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만경대를 두고 ‘청간역의 동쪽 수리(數里)에 있다.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 일어서고 층층이 쌓여 대(臺) 같은데 높이가 수십 길이 되며 위에 구부러진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있다.대의 동쪽에 작은 누각이 있었으며 대 아래는 모두 어지러운 돌인데 뾰족뾰족 바닷가에 꽂혔다.물이 맑아 밑까지 보이는데 바람이 불면 놀란 물결이 어지럽게 돌 위를 쳐서 눈인 양 사면으로 흩어지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다’라고 기록돼 있다.만경대 옆에 별도 건물로 만경루가 유지됐고,만경루와 청간정은 다른 건물로 연접돼 있었다는 점을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 속 ‘청간정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속에는 만경대와 함께 3칸 크기의 청간정과 정면 5칸,측면 2칸의 누각(만경루 추정)이 함께 있고 건물 뒤편으로 송림과 어가(漁家)들이 표현돼 있다.

김광섭 사학자는 “1950~1970년대 허기진 배를 채우기 바빴고 고성지역은 한국전쟁 이후 곳곳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관계로 역사유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며 “향후 지역 역사유적 복원 차원에서 만경대가 개방돼 청간정을 찾는 주민·관광객들이 향유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동명 ld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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