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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철암탄광역사촌, 산업유산·생활상 그대로 재현 물속에 기둥 박아 세운 까치발 건축물 11동 남아 외부 옛모습 보존, 내부 문화역사체험 시설 조성

거리 곳곳 묻어있는 아날로그 흑백 감성, 레트로 감성따라 되살아나는 풍경들

2021. 01. 07 by 김우열

[강원도민일보 김우열 기자] 태백은 촌스럽다.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듯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흑백감성을 잔뜩 머금고 있다.근데 이상하다.촌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레트로(복고풍) 감성이라며 열광한다.그렇다.지금은 촌스러움이 핫트렌드다.태백은 현재와 미래의 설계 뿐만 아니라 옛날 옛적 촌스러움도 잘 보존하고 있다.골목 어귀,기차역,건축물,광부들의 삶의 현장은 60~70년대 탄광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 희로애락의 향수를 마구 내뿜는다.코로나19로 외출이 부담스럽지만,태백의 촌스러움은 걷는 도중이나 차량 안에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장롱을 뒤져 복고감성의 옛 옷을 꺼내 입고 태백의 촌스러움을 대표하는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시간·추억여행을 떠나보자.

옛 주거·상업공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철암탄광역사촌은 산업유산과 생활상,역사의 흔적을 재현해 놓은 생활사박물관이다.

건물 자체가 사람 나이로 치면 예순을 훌쩍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암역을 지나는 도로에 인접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역사촌인지,그냥 시대에 뒤떨어진 깡촌 풍경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 철암탄광역사촌 앞 거리 모습.
▲ 철암탄광역사촌 앞 거리 모습.

역사촌을 배경으로 대충 포즈를 취해도 평생 간직할 인생 최고의 걸작사진이 탄생한다.영화 속 주인공도 될 수 있다.

역사촌은 광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눈물의 현장이다.

철암은 하천 바닥에 목재 또는 철재로 만든 지지대로 주거공간을 넓힌 ‘까치발 건축물’로 유명하다.물속에 기둥을 박아 세운 수상 가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주거공간이 절대 부족,까치발 건축물이 탄생했다.현재 11동이 남아있다.

▲ 철암탄광역사촌 앞 식당광부조각상.
▲ 철암탄광역사촌 앞 식당광부조각상.

사람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좁디 좁은 방에서 한가족이 거주한데다 많은 방들이 오밀조밀 빽빽이 모여있고,부엌과 주방 하나를 공동으로 써 광부들은 집에서 조차 편히 쉴 수 없었다.

역사촌 외부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고 내부는 실생활 모습과 아트하우스,야외 설치미술 전시관 등 문화역사체험 관광시설로 조성됐다.

▲ 철암탄광역사촌 까치발 건축물 뒷모습.
▲ 철암탄광역사촌 까치발 건축물 뒷모습.

까치발 건물 내에는 당시 광부들이 즐겨 마시던 막걸리 등을 파는 선술집,자장면집 등 서민형 식당이 복원돼 있다.영화세트장을 옮겨다 놓은 듯 호남슈퍼,한양다방 등 옛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역사촌 건물 뒤로는 아내가 아이를 업고 남편에게 손을 흔들고,맞은편 강변에서 아내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일터로 나가는 광부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있다.

신발을 벗고 잠시 쉬고 있는 광부 조각상도 있다.쉼없이 교대근무를 했던 당시 광부와 가족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표현해 왠지 모를 아련함이 묻어난다.역사촌 인근 과거 탄광사택이 몰려 있던 비좁은 삼방동 미로골목에는 광산 근로자들의 생활상과 애환 등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눈길을 끈다.우리네 아버지,어머니,가족,동료,선·후배들의 발자욱을 따라 때묻은 거리를 걷다보면 그 옛날 그대들의 인생살이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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