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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이승휴 선생 얼이 깃든 삼척 천은사 삼척 천은사, 신라 백련대·고려 충렬왕 때 간장사·조선 선조 때 흑악사 변경 조선 건국 태조 5대조 능 준경묘 만들며 ‘하늘의 은혜 입었다’ 뜻 천은사 명명 목조아미타삼존불·통일신라 양식 소형 금동불 발견, 역사 예술적 가치 우수 민족 대서사시 이승휴 선생 ‘제왕운기’ 탄생한 곳, 사찰 내 사당 동안사 위치 인근 준경묘 조선최고의 명당, 금강송 숲길 현재 산림욕 명소로 관광객 인기

이승휴 품고 제왕운기 낳은 두타산 자락, 올곧게 뻗은 아름드리 고목 역사를 지키다

2021. 02. 18 by 구정민

고려 3대 역사책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삼척시와 동안이승휴사상선양사업회는 매년 천은사 내 동안사와 죽서루 일원에서 동안대제와 전국학생백일장,사생대회 등 ‘이승휴 제왕운기 문화제’를 열고 있다.올해는 삼척시와 강원도민일보가 함께 ‘이승휴 정부표준 영정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왕운기는 이승휴가 고려 충렬왕 때

고쳐야 할 폐단 10개조를 올려 파직된 후

삼척으로 내려와 미로면 두타산 자락인

구동,현재의 삼척 천은사지

용안당(容安堂)에서 지었다.

고려말 외세에 굴복당할 때

겨레의식을 일깨운 역사서인

제왕운기를 집필해 국가의 보물로 남긴

이승휴 선생의 업적과 정신은

현대까지 이르고 있다.
 

▲ 우리나라 역사서 최초 발해를 편입시킨 제왕운기가 탄생한 이승휴 유허지가 있는 삼척 미로면 천은사 경내.
▲ 우리나라 역사서 최초 발해를 편입시킨 제왕운기가 탄생한 이승휴 유허지가 있는 삼척 미로면 천은사 경내.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 정신 깃든 천년의 정원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과 이어진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천은사에는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가 탄생한 ‘이승휴 유허지’가 있다.일주문을 지나면 백두대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벚나무와 전나무,느티나무 등 높은 키를 자랑하는 오랜 고목이 반긴다.천은사 경내 불이교를 건너면 동안사(動安祠)가 있는데,이 곳은 천은사에서 동안 이승휴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고려 충렬왕에게 ‘나라 형편이 어렵고 백성은 굶주려 있는데,왕께서 사냥하고 연회를 벌일 때가 아니다’는 등의 내용으로 고쳐야 할 폐단 10개 조를 올려 파직된 이승휴가 삼척의 구동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당호를 ‘용안당’이라 칭했다.이 곳에서 이승휴는 정원을 가꾸고 불경을 읽으며 ‘제왕운기’를 집필했다.

제왕운기는 상·하 권으로 돼 있는데,상권에는 중국 역사의 요점을 신화시대부터 삼황오제,하,은,주의 3대와 진,한 등을 거쳐 원의 흥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내용을 담고 있다.하권에는 우리나라 역사에 관한 내용으로,단군의 전조선,후조선,위만,삼한,신라·백제·고구려 3국,후삼국과 발해가 고려로 통일되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특히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서 최초로 우리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북방 고토에 대한 회복의지를 제시한 것으로,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공세에 대처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승휴는 고려 고종 11년인 1224년 경산도 경산에서 태어났다.9세부터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총명했던 이승휴는 14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가인 삼척에서 거주했다.이후 29세에 과거에 급제해 어머니가 계신 삼척으로 금의환향했으나,몽고의 5차 침입으로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삼척의 요전산성에서 몽고군과 항쟁했다.이후 두타산의 구동(현 천은사지)으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를 봉양했고,이후 관직을 얻었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올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와 맞서면서 왕에게 신랄한 상소를 올리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승휴 선생이 머물던 구동,천은사지는 신라 경덕왕 17년(758년),서국에서 건너온 두타삼선이 산의 세 곳에 연꽃으로 표식을 남겼는데,이 표식을 쫓아 남쪽에는 금련대(현 영은사),북쪽에는 흑련대(현 삼화사),서쪽에는 백련대(현 천은사)를 건립한 것을 기원으로 삼는다.다만 백련대가 온전한 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중창하면서 부터이고,고려 충렬왕 때 동안 이승휴가 이곳 용안당에서 대장경을 다 읽었다는 뜻으로 백련대를 간장사(1304년)로 바꾸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이후 조선 선조 31년인 1598년 서산대사가 중건할 때 절의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르다고 해서 ‘흑악사’로 이름을 바꿨다가 1899년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능(준경묘)을 만들고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았는데,이 때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로 천은사로 바꾼 것이 지금의 명칭이 됐다.

천은사는 1948년 화재로 전소되고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76년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경내에 동안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를 건립해 1979년부터 매년 선생을 위한 다례제가 진행되고 있다.천은사에는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과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소형 금동불이 있다.금동약사여래입상은 1985년 천은사 경내에서 출토된 소형금동불로,불신 10㎝,대좌 4㎝,불상의 전체 길이 14㎝이다.이 불상은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양식을 계승한 유물로서 신체와 대좌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인체 표현도 섬세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가까이 모시고 있다.본존인 아미타불은 불신 높이 약 100㎝,무릎 폭 약 74㎝로 전체적인 비례가 조화롭다.

 

 

 

▲ 삼척 준경묘
▲ 삼척 준경묘

 

 

조선 왕조 발상지 삼척 준경묘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는 풍수상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조선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가 있다.고종 3년(1899년) 준경묘 제각과 비각을 건축하고 17㎞ 남짓 떨어져 있는 ‘흑악사’를 원당사찰로 지정하면서 천은사로 사명을 개명한 인연을 갖고 있다.

활기리(活耆里)라는 지명은 황제가 나왔다는 ‘황기(皇基)’에서 유래했다.조선왕조의 태동을 예언한 백우금관의 전설(백마리 소 대신 흰 소,금관 대신 귀리 짚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양무장군과 4대조 목조대왕(이안사)이 살던 곳이다.양무장군 묘역인 준경묘 주변으로 울창한 황장목 숲이 우거져 있어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림욕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활기리에서 준경묘로 가는 길목은 가파른 산길로,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탁 트인 평지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금강송 숲길이 시작된다.하늘로 곧게 뻗어있는 금강송은 속이 누렇고 단단해 황장목이라 불린다.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재목으로 썼다고 하며,지난 2008년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과 광화문을 복원할 때도 사용될 정도로 아름드리를 자랑한다.준경묘 입구에 있는 ‘미인송’은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 소나무와 혼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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