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나라를 지킨 공, 고마움 전하려 왕은 한석봉의 글씨를 준비했다 < WE+ < 특집 < 큐레이션기사 - 강원도민일보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WE+

[WE+] 홍천박물관 홍천박물관 전시중인 ‘홍진호성공신교서’ 남양홍씨 예사공파 개관 기념 21일까지 대여 ‘홍진’ 선조 호송·전후 재건 등 공적 기록 당대 최고명필 한석봉 작성, 작품가치 높아 한반도 중석기 시대 규명 ‘흑요석’ 등 전시

나라를 지킨 공, 고마움 전하려 왕은 한석봉의 글씨를 준비했다

2021. 03. 05 by 권재혁
▲ 김성호 홍천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이 쓴 홍진호성공신교서를 자세히 들어다 보고 있다.
▲ 김성호 홍천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이 쓴 홍진호성공신교서를 자세히 들어다 보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권재혁 기자] “홍천박물관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 글씨를 관람하려 오세요.”

홍천군이 지난해 12월21일 홍천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특별전시하는 한석봉 글씨의 홍진호성공신교서(洪進扈聖功臣敎書)가 21일 막을 내린다.봄을 맞아 야외로 나들이 가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석봉 글씨도 보고 선사시대부터 어어진 홍천의 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는 홍천박물관 방문을 권한다.

홍진호성공신교서(洪進扈聖功臣敎書)는 조선시대 선조가 1604년 홍진에게 호성 2등 공신을 내리면서 공적을 기록한 교서로 2001년 보물 제1308호로 지정됐다.이 교서는 홍천에 살고있는 남양홍씨 예사공파 종회(회장 홍계원)가 보관하던 것을 홍천박물관 개관을 맞아 대여한 것이다.이 교서는 당대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것으로 서예작품으로도 가치가 높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후 전장에서 왜적을 무찌른 선무공신과 선조를 의주까지 수행하는데 기여한 호성공신,그리고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청난공신으로 나눠 책봉했다.홍진은 호성공신 2등에 책봉됐다.호성공신 1등은 이항복과 정곤수등 2명뿐이고,2등은 이원익,윤두수,유성룡 등 당대 최고의 신하들이 책봉돼 홍진이라는 인물이 대단했음을 알수있다.홍진은 오위장(五衛將)에 임명돼 선조를 호종했고,전쟁후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에 임명돼 선조가 돌아오기전에 불에 타버린 궁궐을 재건하는 등 임금의 환도를 준비하고 전쟁으로 식량과 집을 잃은 백성에게 소금과 물자를 분배해 전쟁이 남긴 상처를 수습하는데 힘쓴 것으로 공신록에 적혀있다.이 교서는 명주 바탕에 두꺼운 한지를 배접한 두루마리에 전문63행이 해서체로 쓰여 있고,마지막 행 발급일자 위에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왕의 보인이 찍혀있다.
 

▲ 홍천박물관 전경
▲ 홍천박물관 전경

홍천은 마르지않는 홍천강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들을 갖춰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 훌륭한 문화를 형성했다.신석기시대는 철정리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편,반달돌칼,청동기 시대는 석제·토제가락바퀴,철기시대는 토기항아리 등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 홍천을 대표하는 시대는 중석기와 철기시대다.1991년 북방 하화계리 사둔리 유적에서 나온 작살등 3000여점은 우리나라에도 중석기시대의 존재를 알려 한반도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 약4000년의 역사적 공백을 연결하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그곳에서 발견된 흑요석은 당시로서는 매우 고급재료였다고 한다.흑요석은 강원도와 남한일대에서 발견되지 않다가 2004년 유적지 발굴단이 러시아과학원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하화계리 흑요석이 백두산에서 채취한 흑요석과 동일성분임을 확인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하화계리 두곳에서 석기제작장도 발견돼 당시 높은 생활수준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홍천박물관에 전시되는 흑요석
▲ 홍천박물관에 전시되는 흑요석

또 홍천에서 철기시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홍천은 성산리 유적에서 한성백제 토기,역내리와 철정리유적에서 신라고분과 주거지,고구려토기의 출토로 고구려·백제·신라등 삼국의 세력이 교차했음을 알수있다.왜 그랬을까.바로 홍천 두촌에서 철이 생산됐기 때문이다.이를 증명하는 유물이 철을 만들때 바람을 집어넣는 송풍관으로 철정리과 성산리에서 영서지방에서 유일하게 발견됐다.삼국시대 유물은 박물관밖에도 있다.견고하게 쌓은 석화산성과 대미산성이 삼국시대 격전지임을 알려주고 있다.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물들도 전시되고 있다.

홍천역사전시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홍천현감을 지낸 원만춘의 덕을 기리는 선정비인 홍천철비(洪川鐵碑)다.홍천철비는 현종2년(1661년) 주물로 제작해 세운 것으로 앞면에는 청백산정(淸白善政)이란 글귀로 돋을 새김했고,뒷면에는 비를 만든 장인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선정비가 철로 되어 있는 것은 전국적으로 드물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홍천박물관은 2003년 건립된 향토사료관을 리모델링(건축면적 683㎡,지상 2층,지하 1층)한후 홍천에서 발굴된 각종유물 12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김성호 학예연구사는 “홍진호성공신 교서는 조선시대 공신록과 최고의 명필을 동시에 볼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어린세대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역사를 알려 자긍심을 높일수 있도록 돌화살촉 등을 만들어보는 석기제작 체험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권재혁

강원도민일보를 응원해주세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보답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