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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구 시가지 폐허 태봉국 등 역사적 유물 사라져 철원역사공원 연내 준공 목표 금강산 기차관광 출발지 역 복원 극장·우편국·보통학교·병원 등 근현대사 실존 건물 들어설 예정

잊혀진 기억을 엮고 흩어진 흔적을 묶다

2021. 03. 05 by 이재용
1931년에 제작된 철원시가도
1931년에 제작된 철원시가도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던 철원은 역사적인 유물이 빈곤한 지역이다.1000년 왕국을 꿈꾸던 태봉국의 수도 인근에 위치했던 옛 철원 시가지 일원은 전쟁이 끝난 뒤 멀쩡하게 남아있는 건물이 단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다.남북 분단으로 폐허상태가 70년 이상 방치되면서 구철원 시가지를 중심으로 한 한때의 번영은 잊혀가는 아스라한 기억이 되고 있다.노동당사와 경원선 철길,수도국지 등 전쟁의 잔해로 남은 폐허와 연계해 추진하고 있는 철원역사공원 사업이 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철원 역사공원과 인근에 위치한 근대문화유적을 둘러보는 것도 철원을 즐기는 방법이다

 

사진 위부터 철원역사공원 조감도,북한노동당사 전경,수도국지,얼음창고,철원 제2금융조합,농산물검사소 모습.
사진 위부터 철원역사공원 조감도,북한노동당사 전경,수도국지,얼음창고,철원 제2금융조합,농산물검사소 모습.

철원역사공원
철원 역사공원(가칭 근대문화거리 테마공원)은 철원읍 사요리(노동당사 인근) 7만여㎡ 부지에 사업비 206억 원을 들여 올해안에 준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공원에는 일제강점기 금강산기차관광의 출발지 역할을 담당했던 철원역이 복원되는 것을 비롯해 극장과 보통학교,우편국,도립병원 등 철원 근대현대사에 실존했던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다.특히 복원된 철원역에서 출발,소이산 정상에 이르는 ‘소이산 모노레일(왕복 1.7㎞)’도 올 연말 완공되면 철원역사공원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동당사
1945년 광복 후 철원을 차지한 북한이 공산독재정권의 강화와 주민 통제를 위해 건립했다.한국 전쟁전까지 사용하던 철원군 당사로 공산 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김화,평강,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 체포·고문·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했다고 한다.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사 뒤 방공호에서 많은 인골과 만행에 사용된 실탄과 철삿줄이 발견됐다.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새로 조성하는 철원역사공원에 인접해 있다.

수도국
일제 강점기에 구 철원 시가지 주민의 상수도 공급을 위해 설치한 저수탱크와 관리소 건물로 하루 1500㎥의 급수가 가능했다.북한공산당이 6·25당시 국군에 쫓겨가며 300명에 달하는 애국인사를 이곳으로 옮겨 총살하거나 지하 6m의 저수탱크에 생매장하고 도주했다고 알려진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철원읍 사요리에 위치한 수도국은 지난 2005년 4월 15일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160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얼음창고
일제 강점기 철원읍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일본인이 개인용으로 세운 콘크리트 단층 건물이다.겨울에 인근 산명호에서 얼음을 채취해 이곳에 보관했다가 여름철 각 업소에 판매했다고 하며 한국전쟁 당시 파괴돼 현재는 벽체만 잔해로 남아 있다.지난 2002년 5월 27일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철원제2금융조합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당시 철원시가지에는 식산은행 철원지점을 비롯해 동주금융조합,철원금융조합,철원제2금융조합 등 4개의 금융기관이 있었다.제2금융조합은 당시 총자산은 49만원,대부실적 34만원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923년 기준 쌀 한가마값이 9원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자산규모가 건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됐으며 현재는 금고로 추정되는 잔해만 일부 남아있다. 지난 2004년 12월 31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7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농산물검사소
옛 철원읍내에 있던 일제 강점기 건물 중 원형 가까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다.원래 이름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로 철원지역의 농산물 품질을 검사하던 곳이다.해방 후 공산치하에서는 양민 수탈과 불순분자 색출,체포 등을 자행하던 검찰청으로 사용됐다.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호로 지정했다.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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