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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벗어나 빨갛게 물들 천년의 역사 속으로

2022. 09. 16 by 박주석

여행하기 좋은 가을이 왔다. 무덥고 붐비는 여름 성수기를 피해 한결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가을 비수기 휴가를 떠날 계획을 잡고 있다면 고성에 위치한 금강산 건봉사를 찾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길 추천한다. 천년고찰 건봉사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마음처럼 당신을 말없이 품어줄 것이다.

▲ 건봉사 불이문
▲ 건봉사 불이문

#고성 금강산 건봉사

국내 최북단 고성에 위치한 한적한 고찰이지만 숲이 무성한 산속에 있어 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이다.

건봉사는 신라 아도(阿道) 화상이 법흥왕 7년 520년에 창건해 원각사라 했다. 경덕왕17년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 스님 등과 1만일(27년 5개월) 동안 염불을 외우며 수행하는 염불만일회를 시작했다. 여기에 1829인의 신도가 참여했는데, 이것이 살아서는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은 후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한다는 염불만일회의 시초가 됐다. 1358년에는 나옹스님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했다.

한때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거느렸던 조계종 31본산 중 하나였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됐고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됐다.

한국 전쟁 당시 사찰의 전각으로 유일하게 남은 것이 절 입구의 불이문이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한때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 능파교가 있다.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 건봉사 전경
▲ 건봉사 전경

이 다리를 건너면 십바라밀석주가 서 있다. 십바라밀은 수행자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행하는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6바라밀에다가 방편·원·력·지의 4바라밀을 첨가한 것이다.

이어 봉서루를 지나면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은 지난 1994년 복원됐다. 대웅전 앞 누각 봉서루에는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건봉사는 금강산 최남단의 향로봉 남향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금강산 건봉사라 한다.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명부전은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영령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분단 조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건봉사로서는 뜻이 깊은 곳이다. 능파교를 건너지 않고 왼편으로 보면 대웅전보다 더 웅장한 극락전이 위치해 있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건봉사는 부처님의 치아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라는 사실이다.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 사리를 약탈해 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오고서 세웠다. 이때부터 석가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었다. 적멸보궁 뒤편에 사리탑이 있다. 석가여래진신사리탑 뒤편으로 1726년에 세워진 석가여래치상탑비 등 비석이 2개가 서있으며 왼쪽으로 3과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계단(불사리탑)이 있다.

▲ 건봉사 초입에 위치한 사명대사 동상
▲ 건봉사 초입에 위치한 사명대사 동상

#건봉사와 사명대사

건봉사 초입에는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다. 사명대사를 기념하기 위한 의승병기념관도 있다.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년)의 본관은 풍천(豊川), 속명은 임응규(任應圭)이며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1592년(임진년) 4월 시작된 왜란은 전 국토를 피로 물들였다. 전란으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가족을 잃은 자들의 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왜와 대항하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고 이는 불교계에도 영향을 줬다. 고성에서는 사명당이 스승인 서산대사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을 모았다.

그 장소가 현재 금강산 건봉사다.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으로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작전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1604년 임금의 친서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과 진신사리를 되찾아 조선으로 귀국한다. 이 진신사리는 자장(慈藏) 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아 온 것으로 통도사에 봉안하였던 것을 임진왜란 때 왜병이 훔쳐간 것이었다. 사명대사는 만약을 대비해 석가모니의 사리를 건봉사에 보관했다. 건봉사 대웅전 뒤편에는 새로 단장한 유서 깊은 샘물이 있다. 장군샘이라고도 하는 이 샘물은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부상당한 승병들을 이 물로 치료했다고 한다.

▲ 건봉사 능파교
▲ 건봉사 능파교

#건봉사 능파교(보물 제1336호)

능파교는 건봉사 홍교(홍예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다.

‘능파’는 ‘속세의 파도를 헤치고 해탈의 부처님 세계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영교’라고도 한다. 축조 시기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능파교신창기비(1708년 세움)가 불이문 옆에 있어 홍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비에 따르면 능파교는 1704~1707년 축조됐다. 1745년 대홍수로 붕괴돼 1749년 중수됐다. 1880년 다시 무너져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를 고쳐쌓는데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건봉사에 남아있는 홍교는 능파교, 육송정 홍교, 문수교, 청련교 등 4곳이다. 거진읍 냉천리 산5에 문수교와 청련교가 있으며 비지정 문화재다. 청련교는 건봉사 부도군을 지나 사찰 방향으로 100m 정도 거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도로의 5m 지점에 있다. 청련교의 아치석만 남아있고 군인들이 그 위에 기둥을 세워 시멘트 교량을 가설했다. 문수교는 건봉사 사명대사기념관에 진입하기 전 90m 지점에 있다. 박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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